병상수 절반으로 확 줄이고 대학병원출신 의료진 영입…유방암 치료 '드림팀' 구축
[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
"새벽에 응급 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위해 뛰쳐나가는 부친을 보면서 의사라는 직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김성원 대림성모병원 원장에게 어렸을 때 병원은 '제2의 집'이자 '삶의 일부'였다. 대림성모병원은 50년 전인 1969년 11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터를 잡았다. 20병상 규모의 '영등포기독병원' 이름으로 진료를 시작했다. 부친인 김광태 이사장이 설립해 2세인 김 원장이 2015년 바통을 이어받았다. 1970년 9월 지금의 대림성모병원으로 이름을 바꿨으며, 지역거점병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김 원장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부친은 늘 '상시대기' 상태였다. 외과의사였던 부친은 새벽에 급한 수술을 위해 병원으로부터 호출되는 일이 잦았다. 이런 이유로 집도 병원 바로 뒤에 있었다. 당시에는 통금(야간통행금지)이 있던 시절이라 응급수술을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김 원장은 "초등학교를 마치면 병원을 놀이터 삼아 들리곤 했다"면서 "병원이 주요 생활공간이었고, 고민의 여지없이 당연히 의사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회고했다.
◆2014년 갑자기 찾아온 위기...의료 환경에 무게 둔 구조조정 =김 원장이 대림성모병원 경영에 뛰어든 것은 3년 전이다.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김 원장은 2003년부터 12년 간 분당서울대병원 외과 교수로 재직하다 2015년 대림성모병원 원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유전성 유방암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손꼽힌다. 김 원장은 '언젠가는 부친 병원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시기가 늦춰졌다. 부친도 김 원장에게 "빨리 오지 말라"며 조급해하지 않았다. 시설ㆍ인력 등 모든 것이 갖춰진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와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가면서 가업을 이으라고 강요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위기가 찾아왔다. 2010년대 초 갑상선 환자가 급속하게 늘기 시작하면서 대림성모병원은 최신 시술을 도입해 갑상선 분야를 선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14년 갑상선 과잉진료 논란이 불거지면서 감상선 검진 수요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거짓말처럼 환자도 1/3로 줄었다. 가장 중요한 분야이자 성장동력으로 내세웠던 갑상선 분야가 휘청이자 대림성모병원은 생존 자체를 위협받을 정도의 타격을 입었다. 병리과 의사로 부친의 병원에 3년 먼저 들어와있던 아내가 "상황이 안좋다. 이제는 더 늦출 수 없다"고 얘기했다. 그때까지도 부친은 "들어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학교수로 승승장구하는 아들이었다. 김 원장이 병원에 들어온다고 했을 때까지도 '심사숙고' 할 것을 조언했다.
"병원에 처음 들어와서 6개월 동안은 경영에 아예 손을 안댔고, 결재나 회의참석도 안했어요. 경영 안정화를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할 지 몰두했습니다."
고민 끝에 그는 400병상을 200병상으로 줄이는 작업을 단행했다. '환자수만 많으면 돈되는 시절' 되레 병상수를 줄이겠다는 아들의 말에 부친은 반대했다. 김 원장은 "불필요한 환자의 장기 입원으로 간호 등급이 떨어지면 잃는 게 더 많다"며 꾸준히 설득했고 간호사가 돌봐야 하는 환자수가 줄어 환자 만족도는 높아지면서 각종 지표가 개선됐다. 결과적으로 성공이었다.
◆특화 분야 또렷해야 성장...유방암 치료 드림팀 구축 = 김 원장은 상급종합병원보다 규모가 작은 종합병원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특화분야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봤다. 세계 최고 암센터 중 하나인 미국 슬론케터링 암센터에서 전문의를 마치고 2년동안 유전성 유방암을 제대로 연구하면서 전문성을 쌓았다. 김 원장이 분당서울대병원 교수일 때 그에게 수술을 받기 위해서 3~6개월은 기다려야 했을 만큼 환자가 많았다. 외래 진료를 보는 날이면 진료실 3개는 기본으로 열릴 정도였다. 김 원장은 안젤리나 졸리가 유방을 모두 절제하며 이슈가 된 유전성 유방암의 국내 최고 권위자기도 하다.
김 원장은 유방암 치료에 특화된 병원의 기능을 강화하고자 유방 재건, 암 환자의 우울증 치료까지 다학제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성형외과 전문의와 정신과 의료진을 영입했다. 유방암 치료와 긴밀한 영상의학과, 내분비내과, 산부인과 등 다수 진료과에 대학병원 출신 의료진을 영입해 유방암 치료를 위한 '드림팀'을 구축했다. 김 원장은 "유방암은 심리적 상처가 다른 암에 비해 매우 큰 편"이라면서 "환자 수를 무작정 늘리기보다 환자가 건강 회복은 물론 심리적인 만족까지 느끼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강조했다.
대림성모병원은 부친 경영 시절인 1990년부터 5년 연속 국내 개인사업자 소득세 전국 1위를 차지하면서 화제를 모은 병원이기도 하다. 김 원장은 "어렸을 때 부친은 환자를 돌보느라 식사도 제 시간에 못하고 휴가도 못갈 정도로 늘 바빴기 때문에 사실 부친과의 추억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면서 "병원에 들어오면서 부친과 추억도 새롭게 쌓고 의사로서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즐겁다"고 웃었다. 그가 지향하는 병원은 '떼돈을 버는 병원'이 아니다. 환자는 물론 직원이 만족할 수 있는 병원이다. 김 원장은 "일차적으로 병원 직원이 만족하지 못하면 의료서비스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병원이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곳인만큼 직원들의 복리후생을 높이고 만족도를 높여 질 좋은 의료환경을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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