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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자산특수성과 불공정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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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자산특수성과 불공정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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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사회의 큰 흐름 중 하나는 경제민주화와 수평적 평등 관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갑을 관계로 지칭되는 불공정 관계가 있다. 나아가 불공정 관계의 한쪽에는 시장의 불완전성과 자산전속성과 같은 경제적 현상이 자리하고 있다. 필자는 본 칼럼에서 자산전속성에 대해 간략히 다뤄보고자 한다. 자산전속성(asset specificity) 또는 자산특수성은 특정한 관계하에서는 가치를 지니지만 그 관계를 벗어나면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자산이나 투자를 의미한다. 2009년 노벨상을 받은 올리버 윌리엄슨 교수가 토대를 쌓은 거래비용 기업경제학의 핵심적인 개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자산전속성을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현실적인 예를 몇 가지 생각해보기로 하자. 어떤 은행에서 오랜 기간 재직한 은행원 K라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K씨가 쌓아온 업무 경험은 은행에 재직하는 동안에는 매우 귀중한 무형자산일 것이다. 그러나 K씨가 은행업이 아닌 다른 직종으로 이직하는 상황이라면, K의 업무 경험은 가치를 상당 부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때 K의 업무 경험은 은행 업무에 한하는 전속성을 띠는 자산에 해당한다.

또 다른 예로 A라는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 B를 생각해보자. B사가 A사에 납품하기 위해 설비투자를 했다면, 이 또한 전속성을 가진 설비투자일 가능성이 있다. 즉 A사에 납품을 계속한다면 투자를 통해 B사가 확보한 생산설비는 가치가 있는 자산이지만, A사와의 납품 계약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생산설비의 가치는 상당 부분 사라질 수도 있다. 이처럼 전속성을 띠는 자산은 특정 관계에서만 가치가 있게 되기 때문에 자산전속성을 관계특수성(relation specificity)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산전속성이 왜 불공정 관계를 가져오는 것일까? 앞의 K씨의 예를 다시 생각해보자. K씨의 업무 경험은 은행에서 재직하는 동안에는 5000만원 정도의 가치를 가지지만 은행업이 아닌 다른 직종에서는 3000만원 정도의 가치를 가진다고 하자. 그렇다면 은행은 K씨에게 반드시 5000만원의 경제적 보상을 해줄 필요가 있을까? 대답은 당연히 '아니오'다. 어차피 K씨는 다른 직장으로 이직해도 3000만원 이상의 임금을 받지 못할 테니 은행은 3000만원을 넘는 임금만 지급하면 K씨가 다른 직종으로 이직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K씨는 자신의 경제적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다고 생각하겠지만.

A사와 B사 간의 납품 관계도 유사하다. B사가 부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설비투자가 선행돼야 하며, 확보한 생산설비를 통해 생산한 부품을 A사에 납품할 것이다. 하지만 B사의 설비투자는 A사에 맞춘 부품 생산을 위한 투자이며, 부품 납품에 앞서 이미 투자가 이뤄져야 하므로 높은 관계전속성이 있다. 따라서 A사는 B사의 (이미 이뤄진) 설비투자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해줄 이유가 없다. 나아가 이미 생산이 이뤄져 납품을 기다리는 부품에 대해서도 충분한 납품 가격을 쳐줄 이유가 없다. 이미 생산됐고, A사 자신이 아니면 별로 필요한 곳도 없는 부품의 가격을 적당히 후려친다고 해도 B사는 어쩔 수 없이 납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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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관계전속적인 속성으로 부당하거나 불공정한 요구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경제학에서는 '홀드업 문제(Holdup problem)'라고 부른다. 앞의 예들 외에도 관계전속적인 자산으로 인한 불공정 현상은 현실에 흔히 존재한다. 한 지역을 오랜 세월 지켜온 동네 맛집이 쌓은 평판도 현 위치에서 영업할 때 의미를 가지는 무형자산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가게 임대료가 인상된다고 해서 식당이 쉽게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을까? 높아지는 임대료는 감내하되 종업원의 인건비 정도만 절감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시장에서는 절대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적절한 (그러나 지나치지는 않은) 정부의 규제와 개입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권철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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