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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골목길] 발 닿는 모든 골목이 박물관, '돈의문 박물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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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에 골목길 전체가 박물관인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유럽의 골목길처럼 고풍스런 건물에 실제 사람이 살지는 않습니다. 옛 건물들과 정취만 남겨둔 것인데요. 건물 전체가 박물관에 전시된 듯한, 혹은 시대극을 찍는 영화 세트장처럼 보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이 실험실 같은 골목의 이름은 '돈의문 박물관 마을'입니다.


[한국의 골목길] 발 닿는 모든 골목이 박물관, '돈의문 박물관 마을' (그림=아시아경제 오성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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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서울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에서 경희궁 쪽으로 걷다보면 서울도시건축센터 건물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 뒷편에 한옥과 양옥이 뒤섞여있는 40여채의 주택들이 아주 좁다란 골목을 이루고 있는 동네가 있습니다. 빌딩숲 한가운데에 건물의 외관은 물론 내부까지 모두 박물관 전시실인 이곳이 바로 돈의문 박물관 마을입니다.


이 골목은 전통적인 한옥만 있는 곳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대식 건물만 있는 것도 아닌, 여러 시대가 뒤섞여 있습니다. 한쪽 끝에는 조선시대 작은 한옥들이 줄지어 늘어서있고, 한쪽에는 1980년대 만화 '아기공룡 둘리'의 캐릭터인 고길동의 집처럼 2층 양옥 단독주택이 있습니다. 좁다란 골목 여기저기에는 또 현대식 엘리베이터가 들어서있죠. 그 뒤편에는 컨테이너 박스 형식의 스튜디오형 건물들이 또 두어개 눈에 들어옵니다. 또 마을 입구 한가운데 버티고 서 있는 '서대문여관'이란 간판은 1970년대 시대극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죠.

[한국의 골목길] 발 닿는 모든 골목이 박물관, '돈의문 박물관 마을'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일대에 위치한 '돈의문 박물관 마을' 표지석 모습(사진=아시아경제 김현민 기자)


[한국의 골목길] 발 닿는 모든 골목이 박물관, '돈의문 박물관 마을' 돈의문 박물관 마을 내에 위치한 돈의문 전시관 일대 전경 모습(사진=아시아경제 김현민 기자)



이렇게 볼거리가 다양해서인지 최근 이곳은 사진촬영 애호가들에게 최고의 장소로 꼽힙니다. 조선시대 한옥부터 1970년대 이후 단독주택 양옥까지 각종 옛 주택건물들이 즐비하고 전시도 많아 찍을 거리가 많습니다. 그리고 주민이 살지 않고 모두 전시관인데다 관광객도 별로 없어 조용히 사진찍기 좋은 곳입니다. 북촌한옥마을처럼 주민들과 마찰을 일으킬 일이 전혀 없죠.


이 마을이 원래부터 이런 독특한 전시실은 아니었습니다. 이곳은 원래 '새문안동네'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마을이었죠. 지금은 강북삼성병원 옆에 터만 남은 서대문, 즉 '돈의문(敦義門)' 안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서대문은 새문이라고도 불리다가 아예 한자로 '신문(新門)'이라고도 불렸었기 때문이죠.


[한국의 골목길] 발 닿는 모든 골목이 박물관, '돈의문 박물관 마을' 1915년 철거돼 사라진 돈의문이 있던 자리인 '돈의문터' 모습(사진=아시아경제 김현민 기자)



서대문이 이 새문이란 이름을 갖게 된 것에는 조선시대 왕실에서 중요시 여기던 '풍수(風水)'와 관련이 있습니다. 1413년 풍수를 보는 지관들이 돈의문을 열어두면 경복궁 지맥을 약화시킨다고 건의를 해서 폐쇄시키고 북쪽에 따로 서전문을 만들어 열었다가, 다시 9년 뒤에 다른 지관의 건의로 서전문을 막고 돈의문을 다시 열었죠. 이때부터 돈의문은 새로 열렸다는 뜻으로 새문이라 불렸고, 근처 마을은 새문안마을이라고 불리게 됐다고 합니다.


조선시대까지만해도 매우 지체높은 관료들과 양반들이 살던 사대부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이 서대문 인근에 조선시대 당시 경기도 지역의 모든 통치를 관할하던 경기감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의 경기도 도지사격의 고위직이죠. 그러다보니 경기감영의 출퇴근 행차가 많았고, 임금의 행차도 간간이 있다보니 서민들은 돈의문 인근보다는 서소문을 통해 한양 서쪽으로 나갔다고 하네요. 이때까지만 해도 서대문이 상당히 중요한 문이었던 셈이죠.


[한국의 골목길] 발 닿는 모든 골목이 박물관, '돈의문 박물관 마을' 돈의문 박물관 마을에 보존, 전시된 조선시대 집터의 모습.(사진=아시아경제 김현민 기자)



그러던 서대문은 오늘날에는 남대문과 동대문과 달리 터만 남게 됐습니다. 그 이유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강제 철거했기 때문이죠. 일제는 1907년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한 이후부터 한양도성의 성벽과 성문들을 단계적으로 없애려 했고, 이에따라 1915년 서대문은 완전히 헐립니다. 일제는 옛 서대문 자리에 도로를 개설했습니다. 이때부터 새문안동네는 관가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모여들어와 살게 됐다고 합니다. 1930년대 이후부터 다양한 양식의 한옥과 목조주택이 밀집한 곳이었고, 한국의 근ㆍ현대 건축의 변화양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골목이었죠.


1960년대 이후에는 한때 이 새문안동네가 과외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동네 주변에 덕수초등학교, 경기중학교, 서울고등학교, 경기고등학교 등 명문학교가 있었고 일대에 주요 입시학원들이 있다보니 사교육 밀집지역이 됐었죠. 당시에는 지금의 대치동 학원가나 노량진처럼 대형학원형태로 운영됐던 것이 아니라 동네 주택에 방을 하나 빌려 10인 이내의 소규모 그룹과외 형태로 진행됐다고 합니다. 이런 곳들을 '과외방'이라 불렀었다고 하네요. 이 과외방은 1980년 7월 교육정상화와 과열과외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고등학생의 입시목적 과외를 전면 금지하면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고 합니다.


[한국의 골목길] 발 닿는 모든 골목이 박물관, '돈의문 박물관 마을' 돈의문 박물관 마을 내에 위치한 한옥들의 모습(사진= 아시아경제 김현민 기자)



이후 점차 쇠락해가던 이 동네는 2000년대 들어서 이 일대가 돈의문뉴타운 재개발 사업과 얽히면서 논란의 중심지 중 하나가 됐습니다. 논란의 시발점은 지난 2014년, 돈의문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이 근린공원 조성을 위해 종로구에 이 박물관 마을 부지를 기부채납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서울시가 이 새문안마을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며 오늘날 박물관마을을 만들었죠. 서울주택도시공사가 34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일부 건축물을 철거하고 리모델링 작업을 시작하면서 지금의 박물관마을이 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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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에는 이곳에서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도 개최됐고 이때 처음 박물관마을이 알려지기 시작했죠. 여세를 몰아 지난 4월 정식 개관했지만 그 이후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고, 유령골목처럼 됐습니다. 서울시와 종로구가 이 박물관 마을의 소유권을 두고 갈등하기 시작하면서 실제 이 골목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할 입주민들이 못 들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는 340억원의 예산을 들인만큼, 마을의 부지, 건물, 운영권 모두 서울시에 귀속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종로구는 애초에 기부채납을 받은 것이 종로구인 만큼 소유권과 건물 운영권을 자치구가 가져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관청들끼리 소유권 분쟁을 벌이면서 입주가 어려워지자, 그 흔한 카페 하나가 없고, 식당이나 부대시설도 없습니다. 미리 신청을 하면 매일 하루 2번 마을투어도 할 수 있지만, 관람객도 거의 없는 편이죠.


서울시가 도시재생사업의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면서 추진했던 박물관마을은 사실상 유령마을로 변하면서 취지가 점점 무색해지고 있습니다. 돈의문 재정비 사업으로 주변에 아파트와 상가가 재개발되면서 이 마을부지의 가치는 1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되자 소유권 분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고, 여기에 혈세로 유령골목을 만드느니 개발하는 게 낫다는 비난도 쏟아지고 있죠. 적어도 마을 전체가 아름답게 박제된 전시관으로 남는 것보단 사람들의 삶이 생동하는 공간이 되는게 낫다는 여론이 지배적인 것 같습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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