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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읽다]'비상구 유도등'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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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읽다]'비상구 유도등'의 비밀 국제표준 '피난구 유도등'의 픽토그램(왼쪽)과 유리관 속에 삼중수소가 봉인돼 자체 발광하는 피난구 유도등(오른쪽).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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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갑작스러운 사고가 일어날 때 대피할 수 있도록 마련된 출입구를 '비상구'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Exit'라고 표기하는데 '출구'보다 비상구가 의미 전달면에서 훨씬 효과가 뛰어나다는 이유로 비상구라고 널리 사용합니다.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비상구'도 원작에서는 다른 도로로 빠져 나가는 출구(exit)를 의미합니다. 국내로 영화가 들어오면서 '출구'보다 '비상구'가 내용면이나 어감상 더 낫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의도적으로 오역한 것이지요.


우리 눈에 익숙한 사람이 밖으로 나가는 모습의 비상구(피난구) 유도등 픽토그램(Pictogram)은 한국 국가표준과 국제표준화기구(ISO)의 국제표준으로 지정된 것입니다.

픽토그램은 그림이나 사진을 뜻하는 '픽토(picto)'와 전보를 뜻하는 '텔레그램(telegram)'의 합성어로 뭔가 중요한 사항이나 장소를 알리기 위해 누가 보더라도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그림으로 된 언어체계를 말합니다. 특히 언어의 차이로 소통에 불편함이 있는 외국인들을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항이나 대중교통 시설 등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과거 '비상구', 'EXIT', '非常口' 등 한글, 영어, 한자 등 다양한 문자로 표지판을 제작해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대부분 픽토그램으로 만들어 안내합니다. 이는 1972년 5월13일 일본 오사카 센니치백화점 화재사건으로 비상시 사람들이 비상구를 찾기 어렵다는 여론이 조성된 이후 바뀐 것입니다.


[과학을읽다]'비상구 유도등'의 비밀 일본 정부가 국제표준기구(ISO)에 픽토그램을 제출하기 전에 사용하던 국제표준 픽토그램. 구 소련에서 만든 도안입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당시 일본에서는 '非常口'라고 한자로 쓰인 표지판을 사용했지만 화재 때 비상구 표시가 식별이 힘들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에 일본 정부가 픽토그램을 공모해 뽑은 작품이 오늘날 널리 쓰이고 있는 피난구 유도등입니다. 일본 정부는 이 피난구 유도등 픽토그램을 ISO에 제출, 기존 픽토그램과의 경쟁을 거쳐 국제표준으로 지정되면서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됩니다.


국제표준으로서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지만 미국에서는 'EXIT'라는 글자가 표시된 붉은색 유도등을 주로 사용하고,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들은 화살표가 함께 표기된 녹색 유도등을, 홍콩에서는 '出口'라는 한자로 표기된 녹색 유도등을 주로 사용합니다.


픽토그램 속 사람이 왼쪽을 향하고 있어 왼쪽 방향이 출구일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는데 방향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 방향에 속아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피난구 유도등 안에 있는 그림 속 사람이 달리는 방향이 탈출구라고 인지하고 그 방향으로 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실험에서도 60% 이상의 사람들이 피난구 유도등 속 사람이 달리는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최근에는 실제 비상구가 있는 방향으로 피난구 유도등 속 사람이 달리도록 하거나 화살표를 함께 넣어서 방향을 확실하게 표시해주기도 합니다.

[과학을읽다]'비상구 유도등'의 비밀 최근에는 국제표준 픽토그램에 화살표를 넣어 출구 방향을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그렇다면 비상구를 나타내는 피난구 유도등의 색깔이 녹색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보통 비상 상황을 나타내거나 위급함을 표시할 때는 붉은색을 많이 사용하는데 반해 피난구 유도등의 색깔은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녹색입니다. 이는 우리 눈이 가시광선 상태에서는 빨간색이 가장 눈에 잘 띄지만 어두울 때는 녹색이 가장 잘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는 간상체와 추상체라는 시세포가 존재하는데 간상체는 빛이 적은 상황에서, 추상체는 빛이 많은 상황에서 활성화됩니다. 비상구가 필요한 상황은 정전이 되거나 화재로 인한 연기 등으로 어두운 상황이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간상체가 주로 활성화되는데 간상체는 붉은 빛보다 녹색 파장의 빛에 더 잘 반응하기 때문에 비상구는 녹색으로 설계된 것입니다.


간상체에 있는 로돕신이라는 색소는 녹색광은 잘 흡수하는 반면 적색광은 흡수하지 못하는데 이를 푸르키네 효과(Purkinje effect)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여전히 피난구 유도등이 붉은색으로 된 곳이 많습니다. 미국은 건물이 넓어 멀리서도 가장 잘 보이는 붉은색을 유도등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벽이나 천정 등에 설치하는 피난구 유도등과 통로에 설치하는 통로 유도등, 바닥에 설치하는 객석 유도등 등은 화재 등으로 인한 정전이 발생했을 때도 빛을 내야 합니다. 그래서 전기로 연결하지 않고 배터리를 사용하거나 자체 발광하도록 만듭니다.

[과학을읽다]'비상구 유도등'의 비밀 서유럽이나 북유럽에서 즐겨 사용하는 비상구 유도등.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녹색으로 반짝이는 피난구 유도등은 방사성 동위원소인 삼중수소를 활용합니다. 인(P) 성분이 있는 유리관에 삼중수소 기체를 넣으면 삼중수소 기체와 인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발광합니다. 자체 발광하기 때문에 전기가 끊겼을 때도 피난구 유도등은 절대 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정전이 발생하면 큰 사고의 위험이 있는 공항 활주로 유도등, 군사용 조준경, 나침반, 의료용 기구 등에 사용합니다. 수명도 13년 정도라 형광등보다 5배 이상 오래 쓸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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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삼중수소가 중수로형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방사성폐기물에서 나온다는데 있습니다. 방사능 누출에 대한 위험이 우려되지만 삼중수소는 얇은 종이나 옷을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방사능 에너지의 강도가 낮고, 사람이 흡입해도 신속하게 체외로 방출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피난구 유도등 안 유리관에 봉인된 삼중수소는 어떤 위험도 없는 초극소량입니다.


비상구 유도등은 평상시 상용 전원이나 배터리에 의해 켜져 있고, 정전이 되면 비상 전원 등으로 자동전환되기도 합니다. 또, 수명이 다할 때까지 계속 켜져 있기도 합니다. 비상구 유도등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생명등이고, 비상구는 생명구인 만큼 평소 철저한 관리만이 수많은 생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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