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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녹색페인트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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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녹색페인트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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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아버지가 혀를 끌끌 차면서 하시던 이야기가 있다. 지난 60년대 본격적인 산림녹화 사업이 벌어지고 있을 시기였나 보다. 당시 우리나라의 산은 무분별한 벌목과 아궁이 문화 등으로 헐벗은 민둥산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그 결과 산림자원 확보는 커녕 나무가 없는 산으로 인해 매년 홍수와 가뭄이 반복되는 악순환이었다고 한다. 정부 주도로 대대적으로 벌어진 산림녹화 사업은 각 행정구역별 할당목표가 내려졌고 지금도 그러하듯 '윗분'의 현장 점검이 예정되어 있었다. 산림녹화라는 업무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일선 공무원들의 대응방식이 하이라이트다. 고위층의 '헬기 순시'에 대비하여 산지에 녹색 페인트를 미리 뿌려서 목표달성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그 시기를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군대 문화를 몸으로 경험한 이들이라면 아마도 대충은 상상할 수 있는 일화일 것이다.


'혁신성장'이라는 정부의 정책방향이 아니더라도 요즘 우리 사회 곳곳에서 혁신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부모세대가 또 우리가 지난 50여 년간 숨가쁘게 달려온 결과 성취한 경제?사회적 자산들을 지키기 위해, 또 마치 폭풍우와 같이 급변하는 대외환경의 도전을 이겨내어 더 잘사는 나라, 보다 정의로운 나라,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나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대로는 안된다는 인식의 확산이길 바란다.

신산업과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는 수용성의 문제보다 혁신으로 가는 길에 더욱 절실한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과거의 인습, 특히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보여주기식 행태와 임시방편적 사고의 개혁이다.


최근 벤처업계에서는 규제혁파 등 혁신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부의 정책적 혁신을 요청하고 있고, 여기에는 과감한 혁신으로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각국 정부의 움직임과 이로 인한 현장의 위기감이 반영되어 있다. 벤처기업 육성이 좋은 일자리 창출과 4차산업혁명 대응의 원천이고, 대기업 위주의 기형적 산업구조의 개선과 끊어진 계층사다리 복원의 방법이라면, 보다 근본적이어야 하고 좀더 과감하여야 한다.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서비스를 공급하지 못하는 기업이 결국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기업의 제품은 아무리 포장이 그럴듯하고 광고로 현혹할지라도, 개개인의 구매경험이 축적되면 오래 버틸 수가 없다. 그래서 기업의 고객은 시장이며, 까다로운 시장의 선택을 받기 위하여 기업들은 치열하게 노력하고 경쟁한다.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공부문은 어떠한가? 정부 정책의 고객은 국민이자 시장이지, 공무원 조직의 상관도 아니고 언론도 아니다.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바탕으로 이해 당사자들간의 치열한 토론과 과감한 의사결정으로 시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근본적 접근을 해야 한다.


행정부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협단체 등 실질적으로 정부정책을 집행하고 기업들과 대면하고 있는 소위 중간 지원조직도 마찬가지이다. 시장과 기업이라는 고객을 위한 절실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행여 그들의 존재 자체를 위해 시장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점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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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들어진 비쥬얼과 레토릭이 가득하나 시장을 움직이지 못하는 정책입안과 집행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50년 전의 그 녹색 페인트이다. 만일 공공부문은 원래 그러하다고 생각한다면 혁신을 포기하는 일이다.
당시 녹색 페인트를 뿌려대는 담당자도 있었지만, 나무 하나 하나에 정성과 사명감을 담아 고된 땀방울을 흘린 이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혁신으로 가는 길에 우리가 해야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일은, 이들 중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일이다.


이정민 벤처기업협회 혁신벤처정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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