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포럼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변화와 연속성'
"北 정책 변화는 일시적 충동 아냐"
"핵과 안전보장·경제 맞바꿈하는 전략적 선택"
트럼프 중간선거 패해 후 탄핵·미중 무역마찰 등 변수
[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 북한이 남한에 이어 미국과 대화에 나서게 된 것은 큰 흐름에서 전략적 변화라고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이 입을 모았다.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를 피하기 위한 전술적인 선택이 아닌, 핵무력 완성에 이어 체제안정과 경제발전을 확보하기 위한 종합적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26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제주 포럼'에서 열린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변화와 연속성' 주제의 세션에서 "현재 북한의 비핵화 움직임을 서방의 압박과 제재를 피하기 위한 전술적으로 보기는 어렵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장관은 "북한이 선제적으로 실시한 핵과 장거리미사일 발사시험 중단이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또 앞으로 있을 미사일 엔진 시험장 불용화 등은 다시 복구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필요한 만큼 일시적인 전술적 변화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세션은 정세현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의 사회로 이 전 장관(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과 진징이 중국 베이징대 명예교수, 오코노기 마사오 일본 게이오대 명예교수, 존 메릴 미국 존스홉킨스대 객원연구원 등 한국과 중국, 일본, 미국 내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이 패널로 참여했다.
진징이 중국 베이징대 명예교수는 북한의 변화와 관련해 "북한 대외 정책 변화는 일시적 충동이나 전술적 변화가 아니라 핵으로 안전보장을 찾고 경제를 맞바꿈하는 큰 전략이 기반한 전략적 변화"라면서 "북한은 노동당 7차 전원회의에서 병진노선을 포기하고 경제로 돌아섰는데 이러한 변화가 오늘날 정국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오코노기 마사오 일본 게이오대 명예교수도 "북한의 변화는 상당히 계획적이었다"면서 "미국에 대한 도발, 즉 벼랑 끝 작전을 단행하면서 핵은 억지력과 외교력의 강화를 의미하며, 미국과 거래를 가능케 만드는 수단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대화에 나섰지만 언제든 되돌아 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존 메릴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객원연구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간선거에서 대패해서 미 의회를 민주당이 주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하거나, 미·중 간 무역마찰이 큰 문제로 발원하는 등 변수가 있을 수 있다"면서 "굉장히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망했다.
이 전 장관도 "김정은이 보여주고 싶은 국가는 선대의 국가와는 다른 것이며 그 중에 핵심은 경제"라면서도 "지향성은 명확하지만 북한 혼자서 할 수 없을 뿐더러, 북한의 선택이 불가역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경제는 상대방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은) 단순한 비핵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 국가 관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며 상당히 지향성을 갖고 있다"며 "(북한)대내적 성장 위해서 비핵화를 할 수 밖에 없고, 경제 제재를 해제하고 고립을 탈피해 국익을 극대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부담이나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에 대해서 아직은 시기 상조지만, 각 국 마다 어떻게 기여를 할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 이사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북한 비핵화 비용과 관련해 "한국과 일본이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발언을 언급하면서 중국과 일본, 한국의 경제 지원 준비상황을 질문했다.
진 교수는 "대북 제재가 풀리지 않으면 중국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서 "대북 제재가 풀릴 때 중국이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북한에 투자를 했다가 철수한 기업들이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코노기 교수는 "북한 지원은 아직 각국 마다 계획 수립단계로 일본도 마찬가지"라며 "일본 정부 입장은 국제사회와 함께 움직임을 보이려고 하는데 지금 초기단계지만 북한 지원을 생각하는 위원회가 출범하려고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다만 "비핵화 지원은 배상과 상관없지만 경제적 지원은 한일기본조약과 비슷하게 (침략에 대한) 배상적인 면에서 이뤄질 것"이라며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경제협력은 국제적으로 남북일이 함께하는 프로젝트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장관은 "북한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요소 중에 자본과 기술을 투자했을 때 비교우위를 가진 것들이 많다"면서 "미국의 지원이 없어도 제재가 해제되면 국제 자본은 북한에 들어갈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우위요소가 명확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비핵화에 몰두하다 보니 잊고 있었던 것이 경제적으로 남북의 유기적, 협력적 관계에 대한 의미"라며 "가장 좋은 전쟁 방지 방법은 경제적 유기적 협력체를 만드는 것이며 경제협력을 통해 전쟁없는 한반도, 핵이 소용없는 한반도를 만드는 것을 전략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오코노기 교수는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소위 '저팬 패싱(일본 제외)'에 대해 "일본인들은 이번 남북, 북·미 합의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만큼 북한에 대해 신용도가 낮다"며 "이러한 점이 일본의 외교를 구속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아베정부는 공약으로 북한의 납치 문제 해결을 계속 주장해왔다"면서 "납치문제 해결이라는 명분 아래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고, 출구는 국교정상화하는 시나리오를 예측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진징이 교수는 종전선언에 중국이 참여하는 문제와 관련해 "중국이 빠진 남·북·미 종전선언을 강조하는 내면에 불편한 진실이 있다"면서 "과거 미국이 동아시아 전략을 추구하기 위해 북핵을 관리하면서 이익을 추구한 측면이 없지 않다. 앞으로 북핵 해결이나 평화협정 등 과정에서 중·미 갈등이 반영될 수 있어 사실상 평화협정이 복잡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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