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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책과 저자]현대향가 제1집 <노래 중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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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책과 저자]현대향가 제1집 <노래 중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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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사귀어 두고
서동 방을
밤에 뭘 안고 가다


우리는 이 '시'를 학교에서 배웠다. 시험에 문제로 나오면 연필을 긁어 답을 썼다. 그래서 이 시를 생각하면 연필심이 갱지 위를 긁고 지나가는 그 깔깔한 느낌이 되살아난다. 붉은 색연필로 매긴 '○, ×'와 점수도 함께. '서동요'라는 이 시는 '향가(鄕歌)'이며 따라서 '노래(!)'이다. '제망매가' '처용가'와 함께 현대 한국인에게도 잘 알려진 작품이다. 신라 진평왕 때 백제 무왕(武王)이 지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의 서동설화(薯東說話)에 끼어 전한다.

삼국유사는 신화적 요소로 충만한 향기로운 책이다. 이 책을 읽을 때는 지상의 극락을 구현한 경주 남산을 걸을 때처럼 무한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온갖 은유와 상징이 지키는 역사의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아경에 빠진다. 신화의 영역에서 느끼는 황홀경은 아마도 호메로스가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를 읊을 때, 아니 노래할 때 경험한 그 접신의 경지와 진배없을 것이다.


서동요는 왕자의 노래라는 점에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모노산달로스' 이아손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설화는 아주 발랄하다. 서동(薯童)이 신라 경주에 가서 꾀를 내어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와 결혼한 뒤 우연히 얻은 금으로 사찰을 창건한다는 이야기인데, 이 설화에 등장하는 노래가 서동요다. '선화공주가 방문을 열어놓으면 밤마다 서동이 와서 자고 간다'는 내용이다. 물론 삼국유사에는 조금 모양을 갖추어 썼다.


"서동이 신라 진평왕의 셋째공주 선화(善花ㆍ혹은 善化)가 아름답기 짝이 없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깎고 신라의 서울로 갔다. 마를 동네 아이들에게 먹이니 아이들이 친해져 그를 따르게 되었다. 이에 노래를 지어 여러 아이들을 꾀어서 부르게 하니 그것은 이러하다. '善花公主主隱 池密只嫁良置古 署童房乙 夜矣卯乙抱遺去如'. 동요가 서울에 가득 퍼져서 대궐 안에까지 들리자 백관(百官)들이 임금에게 극력 간하여 공주를 먼 곳으로 귀양보내게 했다."


이렇듯 신화 속에는 곧잘 노래가 등장한다. 아이들의 합창은 예언이자 치명적인 선고이기도 하다. 서라벌 골목골목 아이들이 외쳐 부르는 노래는 현대의 유행가 이상으로 신라인들 사이에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을 것이다. 왠지 모르게 에로틱하면서도 불온한 기운이 충만한 서라벌의 밤 공기를 현대인도 느낄 만하다. 아이들의 합창은 이럴 때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코러스 역할을 한다. 조금은 노골적인 동작으로 춤도 추었을지 모른다.


진평왕이 왕위를 지킨 시기는 서기 579년부터 632년까지다. 1400년 전에는 우리 문자가 없어서 한자를 사용했다. 그러나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 말은 중국과 같지 않았다(國之語音 異乎中國). 쓰고 읽는 데는 불편이 없었을지 모르나 우리 말을 실어 나르기에는 부족했을 것이다. 우리는 서동요를 눈으로 읽고 머리로 익혔지만 서라벌 저자에게는 노래로 불렸다. 표의문자로 그 느낌마저 가두어 두기는 불가능했으리라.


그래서 신라인들은 향가를 향찰(鄕札)과 이두(吏讀)로 기록했다. 곧 한자(漢字)의 소리(音)와 새김(訓)을 빌려 표기한 것이다. 그래서 '善花公主主隱'으로 쓰고 '主隱'을 '님은'으로 읽었으리라고 짐작한다. 서라벌 사람들이 서동요를 남진의 '가슴 아프게'나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처럼 즐겨 부를 때는 삼국유사의 기록도 문제 없이 해독됐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한자를 잘 알아도 서동요의 가사를 읽기 어렵다.


표본이 많다면 연구를 해서 상당히 정확히 알아내겠지만 현전하는 향가라야 삼국유사에 열네 수, '균여전'에 열한 수 등 스물다섯 수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국어학자 허당(虛堂) 이동림은 평생 '삼대목(三代目)'을 발견하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삼대목은 진성여왕 2년(888년)에 각간 위홍과 대구화상이 왕명에 따라 편찬했다는 전설의 향가집이다. 편찬됐다는 기록만 전할 뿐, 책은 종적이 없다. 발견되면 문학적ㆍ언어적 가치가 엄청날 것이다.


향가는 현대에 이르러 그 미묘한 뜻과 정서마저 대체로 해석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누구도 신라의 노래를 가락에 올려 노래하지는 못한다. 영원히 해소할 수 없는 간격이며, 불가능 그 자체이다. 간혹 현대의 곡조로 노래하기도 하지만 서라벌의 노래는 아니다. 그런데 2018년의 대한민국에서 향가를 짓는 시인 집단이 등장했으니 놀라움을 지나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그 첫 결실로 '현대향가' 제1집, '노래 중의 노래'를 출간했다.


나는 이 책을 받아들고 실소했다. 1500년 전의 노래 형식을 무슨 수로 현대에 되살려 시로 형상화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6월의 둘째 주에 배달된 책을 펴보지 않고 책상에 던져 두었다. 그러다 기독교의 구약성서 중의 '아가(雅歌)'가 곧 노래 중의 노래임을 깨닫고 문득 갈피를 열었다. 이내 고영섭이 쓴 머리말로 들어가 두 페이지를 막힘 없이 읽으니 이런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향가, 즉 국가는 '주술(呪術)적 기능으로서 치병' '치리(治理)적 기능으로서 치국'을 통해 한국문학 최고의 절창이자 최대의 백미로서 자리해왔다. '향가시회'는 우리 고ㆍ중세의 시가이자 노래인 향가, 즉 사뇌가를 현대의 어법과 전통의 형식에 담아 '현대향가'로 불러내고자 한다. (중략) 고ㆍ중세 이래 이 땅의 시인들의 시 형식과 시 정신을 조술(祖述)하고 계승하여 인공지능의 시대에 '자연지능', 즉 '지혜지능'의 노래로 불러 보고자 한다."


형식은 모르겠다. 하지만 정신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으리라. 향가의 정신은 무엇인가. 신라정신? 그렇다면 그 정서와 시정신은 미당(未堂)에 가서 닿는가? 동인들이 지향하는 세계는 혹시 50년 전에 방산(芳山) 박제천이 '장자시'에서 초월해버린 그 세계는 아닌가? 궁금해하느니 책장을 넘겨 몇 수 읽어봄만 못 하리. 뭐가 뭔지 알지 못할 내재율의 더미 속에 향가의 기미가 훅 끼치는 한 수가 있어 옮겨 적는다. 이혜선의 '해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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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눈동자에 불이 화라락/젖가슴이 탱탱해졌다/온몸에 새싹 돋아났다/그 남자의 눈짓 한 번에,'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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