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지희 수습기자]“지금까지의 판타지아가 정열적이고 도발적이었다면, 앞으로의 판타지아는 더 조용하고 행복하고 편안한 느낌을 갈구하는 작품이 될 것”
수채화로 자연을 그리는 정우범(72) 작가가 대표작 ‘판타지아’ 시리즈에 변화를 꾀했다. 판타지아는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야생화 1000여점을 담은 연작이다. 작가는 10여년 간 캔버스 위에 펼쳐온 판타지아에 문자를 더했다. 이른바 ‘문자 판타지아’다.
작품에 담은 문자는 ‘사랑’, ‘행복’, ‘소망’이다. 우리 삶에서 최고 지표로 꼽히는 세 가지 키워드를 뽑았다. 그렇다면 왜 문자였을까. 의미를 직감적으로 전달하면서 동시에 시각적 효과도 얻고자 했다는 설명이다. 작가는 “문자가 갖는 의미를 직접적으로 전달해 행복감을 주고 싶었다”며 “가는 모필붓으로 문자를 작은 글씨로 반복해 쓰면 하나의 큰 글자모양이 나오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적녹황이 중심이 된 판타지아 특유의 다채로운 색감도 검은 문자를 통해 순화됐다. 문자에는 물감이 아닌 먹물이 사용됐다. “검은 글씨에 꽃이 어울리니 색감이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판타지아가 화려함의 일변도라면 여기서는 한풀 가라앉은, 편안하고 순수한 모든 것이 어우러진 느낌이다.”
작가는 큰 변화를 시도하는 지금을 10년마다 돌아오는 ‘전환점’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그 사이에도 크고 작은 시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캔버스를 꽃밭으로만 채우면 지루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양적 여백의 미를 살려 추상기하학적 삼각형과 사각형 등으로 빈 공간을 넣었다. 자연스러운 여백을 만들고 흰색과 검은색을 덧입히기도 했다. 그조차도 답답한 느낌에 세필(細筆)로 글자를 쓰니 이전과 완전히 다른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림도 사람의 나이나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원래 느긋한 성격이다. 적극적으로 발버둥치기보다는 느긋하고 편안한 쪽으로 생각한다. 또 나이가 들면서 젊은이의 열기보다는 나이 든 이의 편안함이 그림에도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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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6년 전에도 큰 변화를 시도한 적이 있다. ‘수채화의 대가’로 불릴 만큼 수채화에 강한 정우범 작가가 유화를 함께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화를 함께 사용하면서 색감이 풍부해질 뿐만 아니라 수정·보완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작가는 “유화는 꼭 필요한 곳에만 살짝 넣어준다”며 수채화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유화에도 장점이 있지만 너무 많이 사용하면 답답할 수 있다”며 “수채화 특유의 ‘번짐’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맛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작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우범 작가의 ‘문자 판타지아’ 시리즈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 판타지아 연작 등 총 30여점이 소개된다. 전시는 인사동 선화랑에서 19일까지 한다.
김지희 수습기자 way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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