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가정 아동학대, 2016년 1366건 기록…처음으로 1000건 돌파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망 사건' '원영이 사건' '고준희양 사망 사건'이 대표적
전문가들 "재혼 하기 전에 가족 구성원들이 철저한 준비해야" 조언
[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이기민 수습기자]
"내가 왜 남의 자식을 키워야 되는데? 너희 아빠에게 양육비 받고 살아라."
계부 A(39)씨의 폭언에 당시 5살이었던 B양이 울음을 터뜨렸다. A씨는 아랑곳 하지 않고 손으로 B양을 밀쳐 바닥에 넘어뜨렸다. A씨는 쓰러진 B양을 발로 걷어찼다. B양의 악몽 같은 생활의 시작이었다.
A씨는 2012년 1월 B양의 엄마와 재혼했다. A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B양을 친양자로 입양했지만 틈만 나면 욕설과 손찌검을 했다. 아이가 6살이 되자 A씨는 본격적으로 B양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빨래를 널어라' '리모컨 가져와라' '차 끓여 와라'는 등 잡다한 심부름도 모두 B양의 몫이 됐다.
B양이 학교에서 상장을 받아오는 날이면 A씨는 "너는 책상에서 공부하지 말고 바닥에서 공부해"라며 타박했다. A씨는 B양이 한 살 많은 자신의 친아들보다 공부를 더 잘한다는 이유로 "공부하지 마라. 학원도 다니지 마라. 돈 아깝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A씨의 폭행은 아내에게도 이어졌다. A씨는 B양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주먹과 발로 폭행하고, B양이 "엄마 때리지 마세요"라며 말리면 "너희 아빠와 살아라"고 폭언ㆍ폭행을 했다.
A씨는 아동복지법위반(아동학대)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B양은 회복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도 범행을 반성하지 않고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법원은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B양에게 상해를 가하는 등 죄질이 불량하다"고 꾸짖었다.
B양의 경우와 같은 재혼 가정의 아동학대 사례는 큰 폭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2016년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계부에 의한 아동학대는 2012년 74건에서 5년 만에 394건으로 5배 이상 많아졌다. 계모로부터 학대 받은 아동도 같은 기간 151명에서 362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재혼 가정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 사건은 2016년 1366건을 기록해 처음으로 1000건을 돌파했다. 재혼 가정(7.3%)은 친부모 가정(53.1%)과 부자 가정(14%), 모자 가정(11.8%)에 이어 네번째로 많은 아동학대 가족 유형으로 나타났다.
재혼 가정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는 학대의 정도와 아이들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큰 경우가 많다. 전국민의 공분을 샀던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망 사건'과 '원영이 사건' '고준희양 사망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지난해 논란이 된 고준희양 사망 사건은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상기 시켰다. 당시 친부와 새엄마는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앓고 있던 5살 준희양이 사망하자 시신을 야산에 매장한 뒤 실종된 것처럼 치밀하게 범행을 꾸민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부모들의 인식이 이 같은 심각한 아동학대를 초래한다고 분석한다. 교육 차원에서 시작된 폭언과 작은 폭력, 밥 굶기기 등의 행동들이 점차 커져서 아이들에 대한 심각한 신체, 정신적 학대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전 결혼의 자녀를 데리고 새롭게 만든 재혼 가정은 구성원의 범위와 가족의 경계 등 여러 측면에서 초혼 가족보다 복잡하고 모호한 점이 많기 때문에 심리정서적 갈등과 스트레스가 크고 가족 응집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김예리 중앙대학교 가족복지학 겸임교수는 "일반 가정은 부모가 아이 출산부터 아동기를 함께 맞는 과정을 거치지만 재혼 가정은 (이 같은) 생애 주기의 과정을 뛰어 넘게 된다"며 "(아이 입장에서는) 내 부모가 아닌 것 같은 공허함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에는 재혼한 부부가 3일간이나 어린 자녀들에게 밥을 주지 않아 징역형을 선고 받기도 했다. 계모 C(48)씨는 9ㆍ10살 남매가 숙제를 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밥을 못 먹게 하거나 얼굴과 머리를 수차례 폭행을 했다.
아이들이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몰래 음식을 먹자 "왜 밥을 훔쳐 먹었느냐"고 추궁하며 밥 주걱으로 아이들의 뺨을 때리고, 한파주의보가 내린 추운 날씨에 집 밖으로 쫓아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재혼 가족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가족에 대한 신념과 규칙, 역할 등을 적극적으로 논의하며 조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재혼한 이후에는 자녀 양육비나 위자료 등이 갈등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부간의 경제적인 상황을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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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현실감이 있을 것 같은 재혼 가정이 오히려 예상되는 일에 대한 인지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재혼을 하기 전에 가족 구성원들이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재혼 가정의 경우 부부만 좋아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의 결합도 동반되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기존의 자녀와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해서 지금 가지고 있는 안정감을 해치지 않아야 된다"고 강조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이기민 수습기자 victor.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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