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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카페]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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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이 인류에게 준 선물, 축복인가 판도라의 상자인가?

[인문학 카페]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 김병민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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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모두 명문대를 나오셨군. 집안 대대로 머리가 좋은가 봅니다.’

‘저희도 부모님부터 저까지 명문대를 나온 집안입니다.’

‘결혼하면 자녀는 바로 가질 예정인데, 아이들은 큰 문제없겠네.’


서울 강남의 P호텔은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과 실내조명으로 첫인상을 좋게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맞선을 보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대화를 쉽게 들을 수 있으며, 이것은 실제로 들었던 내용을 옮겨 적은 겁니다. 낯선 상대로부터 호감을 느끼기 위해 서로 장점을 노출하는 것은 사회적 행위입니다. 그런데 결혼 적령기를 맞은 이성 간에는 조금 복잡합니다. 사회적 우월성만 강조하는 데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연이 내린 위대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바로 번식입니다. 멋진 표현으로 유전물질을 안전하게 자손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소 듣기 민망하고 씁쓸한 내용의 대화에도 고개가 끄떡여집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녀가 자신보다 우월하게 살기 위해서 생물학적 우위를 점유하기를 바랍니다. 유전체를 정확히 알지 못해도 부모의 우수한 형질을 자손에게 전달하고 싶어 합니다. 맞선 대화 중에 뇌는 본인과 상대의 조건으로 자녀가 생물학적으로 안전할 확률을 계산합니다. 멘델의 유전 법칙이나 유전자 염기 배열 등을 공부해서가 아니라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좋은 두뇌가 유전적으로 대물림되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사실 생식이란 결국 유전자의 비빔밥처럼 섞이는 것이고 명문대 출신이라는 사회적 형질이 후대에 재현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오히려 사회적 형질은 양육의 역할이 큰 영향을 끼칩니다. 이제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는 이런 대화가 오고 갈 것 같습니다. “유전적 질병 유전자는 모두 잘라 제거하고 정상 유전자로 치료했습 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요? 유전자 치료는 언뜻 알겠는데, 질병을 잘라 제거를 했다고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간 유전자 지도를 가까스로 만들었는데 이제 수술을 하듯 유전자를 마음대로 고친다는 겁니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런 얘기가 가까운 미래라. 이게 정말 가능하긴 한 걸까요?


생명의 기원을 탐구해온 인류는 생명공학 분야에서 진화라는 자연적 흐름까지 통제가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생명체는 자기증식을 해야 합니다. 복제를 하며 변이와 진화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인류는 생명의 해답을 풀기위해 지식을 증식하고 대를 이어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학사에 주연 못지않은 조연이 등장합니다. 그 주인공은 과학자도 아니고 엉뚱하게도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생명체인 미생물입이다. 1865년에 멘델이 완두콩을 이용한 실험에서 유전의 원리를 처음 밝혀내고 유전체 개념을 제시한 사실은 유명합니다. 가설로 존재하던 유전자는 여러 과학자의 실험을 통해 그 존재가 드러납니다. 그들의 연구 대상으로 보자면 멘델은 완두콩을, 토머스 헌트 모건은 초파리를, 오즈월드 에이버리는 세균을 연구 대상으로 사용했습니다. 실험 대상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데 사실 크기는 크게 문제가 안 됩니다. 완두콩은 한 세대가 나오는 데 1년이 걸리기에 유전을 연구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립 다. 초파리는 2주마다, 세균은 몇 시간만 지나도 한 세대가 지납 다. 결국 연구는 크기가 작고 번식주기가 짧은 생명체를 연구하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제 세균보다 더 작은 생명체가 나올 차례입이다. 바로 바이러스입니다. 세균보다 훨씬 작으면서 유전물질로 가득 차 있습니다. 드디어 유전자의 본 체가 DNA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1952년에 과학자 앨프리드 허시와 마사 체이스는 ‘박테리오파지’라는 바이러스를 통해 DNA가 자기 복제물을 만든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이렇게 DNA는 작은 미생물에 의해 그 정체가 밝혀집니다.


유전자의 정체와 기능이 알려진 후에 과학자들의 관심이 유전자 변이로 옮겨갑니다. 변이는 진화의 재료입니다. 변이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몇 가지 있지만 대표적인 답은 저절로 생긴다는 겁니다. 생명체는 다양성 확보를 위해 자연의 방식을 따르는데 DNA 복제를 하다가 10억 개마다 한 개씩 실수를 합니다.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됩니다. 유전자가 변이를 통해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고 똑같다면 특정 질병에 의해 종이 멸절할 가능성이 있습 다. 현재 우리가 즐겨 먹는 캐번디시 바나나는 유전자 다양화를 가지지 못해 곰팡이로 인한 멸절이 예고된 대표적인 유전자 단일 식물종입니다.


[인문학 카페]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

변이는 유전질환을 만들기도 합니다. 만일 인간의 생식세포의 유전자 30억 개 가운데 인간 유전자에서 변이가 일어나고, 그 변이가 하필 혈액 응고 유전자에서 발생한다면 혈우병에 걸리고 병도 대물림 됩니다. 그렇다면 유전자를 고치면 유전적 질병도 고칠 수도 있다는 논리가 됩니다. 여기에 주목한 과학자들이 치료 효과가 기대되는 유전자를 환자에게 전달해 유전자를 치료합니다. 그런데 이런 치료가 가끔 암세포를 깨워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문제 되는 유전자 부분만 바꿀 수는 없을까? 만약 이런 방법이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치료가 될 것입니다. 유전자 전체를 교체하면 문제가 생기니까 아예 잘못된 부분만 바꿔치기 해서 고치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더 어려워 보입니다. 유전자 염기 배열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쉬운 해결책이 나타났습니다.


이 아이디어는 미생물이 주었습니다. 이들이 DNA의 존재를 알려주더니 결국 인류를 구원하는 주인공처럼 또 다시 등장합니다. 세균의 천적은 바이러스입니다. 바이러스는 자체적으로 증식을 하지 못하고 세균에 침투해 수백 개의 자식을 복제하고 숙주 세포를 터뜨리며 번식합니다. 그런데 세균이 당하고 있지만 않습니다. 세균은 침입한 바이러스의 DNA를 조각내 자기 유전자에 기억합니다. 이후에 자신을 죽이려는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기억한 바이러스 DNA를 잘라내 번식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이런 발상에서 나온 것이 바로 ‘유전자 가위’와 ‘유전자 교정’입니다. 유전자 가위는 이렇게 DNA를 끊어주는 인공효소를 세포 안으로 넣어 특정 유전자를 절단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일부 유전자를 끊고 교체하는 방법이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 지금 유전자 교정은 유전질환이나 혈액암, 또는 감염성 질환의 치료법으로 연구 개발되고 있습니다. 현재 과학계에서 혁명이라고 불리는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가 그런 혁신적인 도구입니다.


중국은 연간 8억 마리의 돼지를 도축합니다. 지방보다 단백질을 선호하는 중국인들의 기호에 맞춰 유전자 가위를 사용해 과도하게 근육이 발달하는 것을 제한하는 생식세포 유전자를 교정했습니다. 우람한 근육을 가진 슈퍼돼지가 탄생한 겁니다. 이제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이 옮겨집 다.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수용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높은 효율로 유전자를 잘라냈습니다. 언젠가는 인류가 에이즈에서 해방되는 순간이 오겠지요.


사실은 성인이 된 사람들의 질병을 유전자 치료법에 의해 고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수십억 개나 되는 분화세포 유전자를 한꺼번에 수선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혈액암 치료는 혈액을 떠돌아다니는 세포를 꺼내 유전자 교정 후 키워서 다시 넣는 방법으로 가능할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유전자 가위를 쓸 수 있겠지요. 나머지 세포들은 줄기세포를 이용해서 다시 집어넣어주는 방법이 있을 겁니다. 실패할 가능성이 높지만 사람들이 줄기세포를 떠올리는 이유이지요.


생명공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인류는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생물이 알려준 진실은 분명 인류에게 축복입니다. 인간배아를 대상으로 하면 돌연변이 자체를 교정할 수 있습니다. 유전 질환을 영구적, 비가역적으로 고칠 수 있다는 겁니다. 우월한 유전자가 이기적으로 대물림이 되고 모든 사람이 우월한 유전자를 동경하며 완벽한 인류의 모습으로 서로 닮아가는 미래가 옵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아주 느린 속도로 변이를 통해 자연선택을 하며 진화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연선택이 아니라 인간선택이 가능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마냥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어느 미래의 맞선 자리에서 나오게 될 유전자 교정에 대한 대화에는 마치 바나나처럼 다양성을 잃는 인류가 미처 알지 못한 질병으로 멸절하거나 그 혜택을 받을 수 없다면 사회적 차별을 넘어 생물학적 차별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생물에 의해 배운 생존 방식 하나가 인류에게 축복일지 아니면 인류가 열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인지는 지금 우리에게 던져진 고민이자 숙제입니다. 어쩌면 인류가 알아야 할 또 다른 해답도 미생물에게서 얻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병민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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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huhba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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