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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우리가 남이가' 문화를 다시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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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우리가 남이가' 문화를 다시 생각하며 정은귀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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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검찰이 유병언을 찾으러 금수원 진입을 시도할 때 구원파 신도들이 내건 '우리가 남이가' 플래카드를 다들 기억하실 게다. 1992년 부산 모 식당에서 당시 법무부 장관 김기춘이 한 말 '우리가 남이가'도 있다. 대통령 선거용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자는 목적이었다. 옛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여전히 이 의식이 우리 사회에 병든 문화를 조장하며 퍼져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말하는 이의 도덕적 책임감을 변제하며 되풀이되는 이 말은 '잘 봐 달라, 서로를 이용하자, 법이 무슨 상관이냐'가 핵심 의미다.


우리가 남이가. 대부분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울 게다. 하지만 우리는 남이다. '남'은 친인척 관계가 아닌 사람으로 정의되지만 더 정확히는 '자기 이외 다른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남, 타인이다. '우리가 남이가'는 관계에 대한 성숙된 질문이 아니라 병든 회유로 유통된다. 실상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남이가'는 학연이나 지연에 의한 연고주의를 넘어 '유사가족'의 형태로 가동된다. 문제는 '유사가족'의 테두리로 확장된 '우리가 남이가' 문화가 얼핏 보기엔 공동체의 연대를 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힘의 행세나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인턴을 성추행한 상사는 말한다. 내 딸 같아서 그랬어. 쌍욕을 퍼부은 운전사에게 회장이 말한다. 동생 같아서 그랬어. 인생 선배가 잘 되라고 한 말이 뭐가 서운해. 먹을 것도 챙겨주지 않고 일만 시킨 가정부에게 말한다. 며느리 같이 편해서 그랬어. 법적으로 정해진 시급을 떼먹어가며 자기 배만 부풀린 사장이 말한다. 우리 조카 착하기도 하지. 폭염으로 쪄죽든 혹한으로 얼어 죽든 경비실에 냉난방도 못하게 막는 주민이 말한다. 아버지 같은 분을 저희가 어련히 잘 모시겠습니까. 비정규직 노동자를 밥하는 아줌마로 비하했던 국회의원도 그랬다. 실은 어머니 같아서 그랬던 겁니다. '유사가족주의'에 기댄 폭력은 계절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달라질 줄 모른다.


이러한 유사가족주의는 강한 자들의 끼리끼리 연대를 고취하고 어디 호소할 곳 없는 약한 이들에 대한 폭력적인 지배를 강화한다. 사실 연대는 사람을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는 가장 귀한 조건이다. 연대는 몫이 없는 자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약한 자들의 연대는 자주 훼손당하고 강한 자들의 연대는 집요하게 계속된다. 지연과 학연을 중심으로. 대학교를 넘어 고등학교까지 이야기하며 '우리가 남이가' 한다. 지연ㆍ학연ㆍ권력관계에 기대지 않고 오롯이 제 일을 하는 이들은 늘 손해다. 잘못을 해도 유사가족주의에 기대 온갖 관계망을 가동한 이는 처벌을 적게 받고 소위 인맥을 적게 쌓고 자기 일만 묵묵히 한 사람은 더 큰 화를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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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기대 큰 소리 치던 사람들은 잘못이 드러나도 "위에서 하라는 것만 했는데 뭐가 잘못이냐, 억울하다"고 호소한다. 잘못된 명령엔 불복하고 자기 조직의 문제는 바로 잡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쉽지 않다. 하지만 그래서 더 그래야 한다. 아무리 대단한 조직도 '우리가 남이가'에 기대는 순간 썩기 시작한다. 예외 없다. '우리는 남이다'라는 인식하에 세심히 배려하고, 아래에서 위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며, 공평한 원칙과 합리로 일을 처리하는 새로운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 가정ㆍ학교ㆍ회사ㆍ정부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모든 조직과 집단에 필요한 의식이다. 건강한 연대는 원칙에 대한 신뢰에서 싹튼다.

정은귀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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