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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유엔을 흔드는 손, 트럼프와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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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뉴욕 김근철 특파원] 흔치는 않아도 데자뷔(기시감)를 느낄 때가 있다.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장면이 마치 과거에 이미 경험했던 것처럼 여겨지는 경우다.


지난 11일에도 그런 기시감을 체험했다. 뉴욕 유엔(UN) 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대북 제재 결의 2375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서다.

안보리 의장이 상정된 안건의 취지를 간단히 언급하고 거수 표결에 들어간다. 안건에 대해 미국과 중국이 이미 합의한 상태이기 때문에 안보리 이사국 대표들도 별 고민 없이 손을 들어 찬성한다. 이후 미국을 필두로 대표들이 각자 한 마디씩 발언에 나선다. 미국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강력히 비판하며 포기를 종용하고, 국제사회의 철저한 이행을 강조한다. 한국과 일본도 이에 가세한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 대표들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원칙론에 공감하면서도 말미에는 어김없이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미국과 그 동맹들을 은근히 견제한다.

북한의 도발과 관련된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는 벌써 9번째다. 올해 들어서만 3번째다. 매번 비슷한 장면이 반복돼왔다. 한국의 외교 수장들은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가 나올 때마다 '역대 최강'이며 '가장 촘촘한 제재'라며 큰 기대를 표명하는 일을 되풀이해왔다. 그런데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능력을 갖춘 명실상부한 핵 보유국으로 치닫고 있는 북한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이쯤 되면 안보리를 통한 대북 제재에 회의론이 들 수밖에 없다.


유엔으로서도 여간 체면 구기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한계를 극명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엔 관계자들은 "북한 때문에 유엔 무용론이 나오는 상황"이라며 걱정한다. 물론 "그래도 유엔이 있어서 이 정도"라는 반론도 있지만 북한의 6차 핵실험 앞에선 목소리가 약해지는 게 현실이다.


북한이 아니라도 유엔의 위상은 최근 크게 흔들리고 있다. 반기문 전 사무총장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요한 일은 결국 미국이나 강대국들이 먼저 발표해 버린다"며 푸념을 늘어놓곤 했다. 국제 외교 무대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자인하는 말이다.


더구나 미국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에도 유엔과 국제기구에 대해 강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75호도 그는 "대수롭지 않다"고 치부해버렸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는 유엔에 대한 예산을 대폭 삭감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유엔의 창설을 주도한 산파이자 회원국 중 가장 많은 지원을 해온 최대주주다. 유엔 연간 예산(54억달러)의 22%와 유엔 평화유지활동 예산(79억달러)의 28.5%를 미국이 책임지고 있다.


마침 제72차 유엔 총회가 지난 12일부터 공식 개막했다. 이번 총회 기간에는 200명의 국가 정상과 외교 수장들이 참석해 국제 평화 및 안전, 인권, 개발 등 총 172개 의제에 대해 토의한다. 그중에서 핵심 이슈를 두 개만 뽑으라면 단연 북핵과 미국 문제다. 안토니오 구테레스 사무총장도 사석에서 "이번 총회에서 북한 문제가 가장 큰 이슈"라고 말했을 정도다.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은 총회 기조연설에서 이례적으로 유엔 개혁을 강도 높게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져 유엔을 긴장시키고 있다.


유엔은 국제 공조를 통한 세계 평화 유지를 목표로 1945년 창설된 지구상 최대, 최고의 국제기구다. 거침없이 등장한 '단독 플레이어'들인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 대해 고희를 넘긴 유엔이 지혜로운 해법을 보여줄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만약 여의치 않다면 이번 총회 이후 유엔 본부 건물을 짓누르는 무력감은 한층 깊어질 수밖에 없다. 위기의 유엔이다.




뉴욕 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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