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송화정 기자, 문제원 기자] 6년여 동안 이어져 온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1심 소송이 근로자들의 사실상 승소로 마무리됐다. 법원은 쟁점이 됐던 '신의칙 원칙'을 인정하지 않고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판단해 회사가 3년간 체불한 임금 중 일부를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기아자동차는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권혁중 부장판사)는 31일 기아차 근로자 2만742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선고공판에서 '회사가 체불된 임금의 원금 3126억과 선고일까지의 이자 1097억원을 더해서 총 4223억원을 근로자에게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근로자들은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에 의해 인정되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라며 "이 같은 요구가 사측의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기아차 생산직 근로자들은 2011년 연 750%에 이르는 정기상여금 등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수당과 퇴직금 등을 정해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2014년 10월에는 13명의 근로자가 통상임금 대표 소송을 추가로 제기했다.
소송 제기 시점을 기준으로 근로자들이 회사에 청구한 임금 차액은 청구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은 최근 3년치 임금으로 총 6588억원이다. 여기에 이자 4338억원을 더하면 총액은 1조926억 원에 달한다.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면서도 노사가 합의했거나, 회사가 임금을 소급해 지급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경영 환경이라면 이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이날 판결의 쟁점은 재판부가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지와, 인정해도 신의칙 원칙을 적용해 회사의 지급 의무를 덜어줄 것인지로 좁혀졌다.
그동안 사측은 정기상여금이 총상임금으로 인정될 경우 회사 부담액이 1조~3조원에 달해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생긴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근로자 측은 부담액이 수천억원대에 그칠 것이라며 과도한 억측이라고 반박했다.
신의칙 인정 여부에 따라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게 나오는 상황에서 이날 재판부가 신의칙 원칙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통상임금을 둘러싼 파장이 산업계 전반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기아자동차는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이 인정되지 않은 점은 매우 유감"이라며 항소할 뜻을 내비쳤다. 기아차측은 "청구금액 대비 부담액이 감액되긴 했지만 현 경영상황은 판결 금액 자체도 감내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며 판결 결과에 아쉬워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 단체들도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제시한 신의칙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라며 "통상임금 소송은 노사 당사자가 합의해온 임금관행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일 뿐 아니라 노사간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재계는 소모적인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통상임금의 개념과 범위를 명확하게 정하는 입법조치를 서둘러 줄 것도 주문했다.
송화정 기자 pancake@asiae.co.kr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