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청년경찰'로 촉발된 중국동포 비하 논란
"중국동포 범죄집단으로 매도 대림동은 범죄소굴로 묘사" 동포단체, 상영중단·사과 촉구
일부 범죄사건 등 낙인 때문에 성실한 외국인들도 피해 입어
[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 김민영 기자]“영화에서도 중국동포의 이미지를 왜곡하고 편견을 덧씌우고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인 이주민을 너무도 무시하는 것 아닙니까.”
28일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대림역 9번 출구 앞에서 마이크를 잡은 한 중국동포는 쌓였던 울분을 토로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살면서 이방인이라는 왜곡, 편견, 무시와 계속 싸워왔다고 말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청년경찰(감독 김주환)’이 기폭제가 됐다. 지난 9일 개봉해 5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이 영화는 대림동을 주 무대로 경찰대생인 두 주인공이 인신매매, 난자적출, 살인 등을 서슴지 않는 중국동포(조선족) 조직폭력배에 맞서 납치된 가출 청소년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중국동포들은 영화가 아무런 개연성 없이 대림동을 범죄 소굴로, 중국동포를 범죄 집단으로 매도했다며 분노하고 있다. 대림동에서 4년째 중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양순영(45ㆍ여)씨는 “주말이면 가게 손님의 20~30%를 차지했던 한국인들 발길이 뚝 끊겼다. 피와 땀을 쏟아서 대림동 상권을 일궈왔는데…”라며 고개를 숙였다.
윤영환 이주민센터 ‘친구’ 대표도 “아이가 영화를 보자고 해서 극장을 찾았는데 보는 내내 너무 불편했고 화가 났다”며 “대림동과 중국동포에 대한 편견을 상업적으로 소비하는 것은 한국사회에 큰 해악”이라고 꼬집었다.
더구나 오는 10월 개봉예정인 영화 ‘범죄도시(감독 강윤성)’도 중국동포를 범죄 집단으로 묘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동포들은 이 영화에 대한 상영금지 소송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오원춘 사건, 2014년 박춘풍 사건 등 중국동포에 의한 강력범죄가 발생했던 경기도 수원의 다문화 가정들도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다. 일련의 사건 이후 외국인 순찰대를 꾸려 스스로 치안 활동을 하고, 다양한 나눔 행사 등을 개최하며 중국동포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자 했던 노력들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수원역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중국동포 출신 이모(51)씨는 “한국으로 귀화도 했고,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산 지 30년 가까이 됐지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며 “사고를 저지르는 중국동포들에 대한 미움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를 일방적으로 배척하고 나쁜 이미지를 덧씌우는 데 대한 아쉬움도 크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의 범죄율은 내국인의 3분의 1 수준이다. 최근 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외국인 폭력범죄에 관한 연구’를 보면 외국인 인구 10만명 당 검거인원지수는 1175명으로 내국인(3281명)에 비해 36% 수준이다.
경찰 관계자는 “실제 외국인 범죄가 내국인 범죄보다 심각하다거나 많이 발생한다고는 볼 수 없다”면서 “일부 사건에 의한 낙인효과가 지속되면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외국인들도 피해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나라에 체류 중인 중국동포 수는 73만여명에 이른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중국동포 수가 65만2028명이고, 한국인으로 귀화한 중국동포는 7만3998명(행정안전부ㆍ2015년)이다.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김민영 기자 my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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