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보수의 심장'인 대구에서 폭탄 발언을 끄집어냈다. 국정농단 사태로 구속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출당 문제를 공식 거론한 것이다.
이는 홍 대표가 대선후보 시절 '친박(친박근혜) 끌어안기' 전략을 취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그는 대선 전인 지난 4월 박 전 대통령을 '정치적 사체'로 묘사하며 "출당을 요구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날 대구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홍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의 출당 문제를 놓고 "앞으로 당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할 것"이라며 "정치적 책임의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간과하고 넘어갈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어 "대통령이란 자리는 결과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진다. 책임을 지지 않으면 무책임한 정치가 된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의 출당이 곧 '정치적 책임을 진다'는 의미를 내포한다는 뜻이다.
이는 대선 전 홍 대표가 취했던 태도와 상반돼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홍 대표는 지난 4월 경남 창녕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 전 대통령은 파면돼 이중처벌을 받았다. 이미 회복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에 유리하게 판을 이끌어가려고 이미 정치적 사체가 된 박 전 대통령을 다시 등 뒤에서 칼을 꽂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고 일축했다. 비슷한 시기에 홍 대표는 또 "집권해야 박근혜 탄핵의 진실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며 '태극기 단체'로 대변되는 친박 민심에 구애했다.
홍 대표가 태도를 바꾼 건 대선 패배 후 당권을 쥔 만큼 '친박당' 색깔을 지우고 '친홍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홍 대표의 전략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출당은 그동안 같은 보수정당인 바른정당이 꾸준히 요구해 온 사안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바른정당과의 연대ㆍ통합을 위한 명분쌓기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위원은 17일 "홍 대표는 태극기 부대가 강해지면 박 전 대통령을 감쌌다가, 약해지면 비난한다. 갖고 노는 것"이라며 "박 전 대통령을 정치적 노리개로 삼는 홍 대표는 정치적 패륜아로 심판해야 한다"고 맹비난했다.
박 전 대통령 출당ㆍ제명 문제는 당내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으로 꼽힌다. 탄핵 논란이 불거졌던 지난 해 말부터 지도부는 이를 수면 위로 끄집어내지 못했다. 찬반양론이 갈리고 휘발성이 큰 만큼 이 문제로 향후 당이 소용돌이에 휩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적 혁신을 비롯해 당 쇄신을 주도하고 있는 혁신위원회 내에서도 찬반이 나뉜다. 류석춘 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출당조치를 하는 것은 시체에 칼질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며 반대 의견을 분명히 한 상태다. 반면 최해범 혁신위원은 향후 혁신안에 박 전 대통령의 출당 조치가 담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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