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한국수력원자력이 14일 기습 이사회를 열고 '신고리 원전 5ㆍ6호기'의 공사 일시중단을 결정함에 따라, 향후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증폭될 전망이다.
이번 결정은 한수원 노조와 지역주민, 학계 등의 거센 반발로 한 걸음 물러서는가 했던 정부가 정책 강행 의지를 강하게 내비친 것으로도 풀이된다. 특히 이사회 기습 강행은 법적 배임 논란, 관련업계 줄소송 등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로서는 백년대계를 결정할 에너지 정책을 일방통행식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한수원 노조는 이날 "국가 중요정책 결정을 이렇게 졸속으로 도둑 이사회로 결정한다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이사회 고소ㆍ고발 등 법적 대응을 재차 예고했다. 공론화 기간 중 공사중단 결정은 회사재정에 손실을 입히는 배임행위라는 게 노조측의 설명이다.
노조에 따르면 신고리 5ㆍ6호기 공사를 3개월간 중단했을 경우, 설비 유지와 인건비 등을 포함해 1200여억원이 추가 소요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신고리 5ㆍ6호기 최종 건설 중단시 발생하는 2조5000억원의 매몰비용과는 별도다. 사회적 갈등에 따른 직ㆍ간접적 손실,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 등을 포함하면 비용은 더욱 커진다.
반면 한수원은 공사 일시 중단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형사상 배임에 해당할 가능성이 낮다고 내부적으로 결론을 낸 상태다. 에너지법상 한수원이 국가 에너지 시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 대목 때문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구체적인 손실비용 보전 및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을 협력사와 강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날 노조와 주민들이 공사 일시중단을 막아선 근본적인 이유는 정부가 제시한 3개월의 공론화 과정이 사실상 '원전 건설 백지화'의 수순이라는 판단에서다. 신고리 5ㆍ6호기는 지난해 6월 착공해 공정률이 28.8%에 달하며, 공사비 1조6000억원이 이미 투입된 상태다.
특히 신고리 5ㆍ6호기는 향후 탈원전 정책의 흐름을 가를 정도로 중요 변수로도 꼽히지만, 정부가 최종 중단여부를 놓고 공론화위를 운영하기로 한 기간은 3개월에 불과하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엔 매우 짧은 기간인 셈이다.
이 가운데 노조와 지역주민, 학계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수원이 기습 이사회를 강행하면서 반대여론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조만간 출범할 공론화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시민 배심원단을 통해 어떤 결론이 나든 '일방적 강행'이라는 꼬리표가 붙고, 사회적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회적 공론화를 거치겠다고 밝혀온 정부 역시 탈원전 정책을 대응책 없이 지나치게 빠르게 추진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공약인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중단과 관련해 공론화를 추진하기로 하며 지난달 27일 국무회의에서 불과 20분 만에 공사 일시중단을 결정했다.
건설 중단에 반대하는 주민과 관계자들은 이번 결정이 원자력안전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뤄졌다는 이유로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반발해왔다. 원자력안전법 제17조에 따르면 원전 건설 일시 정지와 취소 결정 권한은 원안위가 가지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은 추후 관련업체들의 무더기 손해보상 소송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상대 공사 중단 반대 범울주군민대책위원장은 "정부가 법에도 없는 원전 일시중단을 결정하고, 한수원이 꼭두각시가 돼 의결했다"며 "한수원 측 진의를 파악하고, 의결 무효 등을 위한 법적 검토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사 일시중단으로 당장 직격탄을 맞은 관련업체들은 내부적으로 대비책 마련에 분주하다. 공사 일시 중단에 따른 유지비용 보상도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일단 정부는 최종 결과와 상관없이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일시 중단에 따른 유지 비용도 보상한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정부 관계자는 "업체 측 과실로 인한 공사 중단이 아닌 만큼 피해가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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