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채 앞 분수대 광장, ‘민의의 용광로’로 변모…전교조 법외노조 철회·사드 반대 등 시위자 다양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정준영 기자]“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청와대 앞에서 나 홀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었는데, 청와대 앞길 24시간 개방 이후에는 폭발적으로 늘었어요.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어요.”(경찰 관계자)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길이 24시간 전면 개방된 지 보름이 지나면서 청와대 사랑채 앞 분수대 광장이 ‘민의(民意)의 용광로’로 변모하고 있다. 피켓을 들거나 어깨띠 등을 두르고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정부는 지난달 26일부터 청와대 춘추관과 정문 앞 분수대 광장을 동서로 잇는 400여m 구간을 전면 개방했다. 이 길은 그동안 밤(오후 8시~다음 날 오전 5시)에는 차량과 사람이 지나다닐 수 없었다.
12일 오후 1시, 30도가 훌쩍 넘는 폭염 속에서도 청와대 사랑채 앞 광장에는 20명의 1인 시위자들이 있었다. ‘앞마당’을 내준 청와대를 향해, 때론 지나는 시민을 향해 “내 얘기 한 번 들어주세요”라고 호소했다. 법외노조 철회를 요구하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회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활동가뿐 아니라 국가에 의해 금전적ㆍ정신적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남성, 사이비 종교에 빠진 자식을 구해달라는 여성 등 시위자들은 각양각색이었다. 최근 사회문제가 된 집배원들의 사망 사고와 관련, 근무여건 개선을 요구하는 집배원들도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내리쬐는 뙤약볕도 시위자들은 막지 못했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소속의 조승현 평화군축팀장은 “한반도에 사드 배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청와대와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시위에 나섰다”고 말했다. 작은 피켓을 들고 인도에 앉아 있는 할머니도 눈에 띄었다. 80대로 보이는 이 할머니는 대통령에게 할 말이 있다며 불쑥 화를 냈다. 주변에 있던 경찰관은 “건강이 염려되니 조심하세요”라며 연신 그를 달랬다.
광장 주변에서 근무 중인 경찰에 따르면 전 정부까지 청와대 앞 1인 시위자는 하루 평균 10명 미만이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서는 시위를 여러 사람이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1인 시위는 집시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에 따라 1인 시위는 신고 등 별도의 절차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
경찰은 청와대 앞이더라도 1인 시위를 최대한 보장하되 돌발 행동은 철저히 통제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반면 집회에 대해서는 엄격하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집시법과 대통령경호법에 따라 청와대 앞길, 초소 앞은 집회를 제한하는 것으로 협의됐다”고 밝힌 바 있다. 집시법상 청와대, 주한 미국 대사관 등 주요시설 100m 이내에서의 집회는 제한된다.
혼란도 있었다.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위해 분수대 광장에 들어서던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위원회 관계자들과 이를 막으려는 경찰 간 몸싸움이 발생했다. 경찰은 ‘정리해고ㆍ비정규직 철폐, 노동3권 쟁취’라는 글귀가 적힌 노란색 조끼를 입은 채 여는 기자회견을 사실상의 집회로 간주했다.
청와대 앞을 지나던 관광객 김모(58)씨는 “미국 워싱턴 백악관 앞에서도 다양한 주장을 하는 시위를 볼 수 있다”며 “청와대 앞이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장이 된 것 같아 좋지만, 보행인이나 관광객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대규모 집회 등은 자제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민영 기자 mykim@asiae.co.kr
정준영 기자 labr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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