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급진 좌파 시사평론가 린허리와 덩샤오핑 시절 외교관 저우난 '가상 대담'
"고도 자치 없고 일국만 남아" vs. "일국양제 성공했다"
[아시아경제 베이징=김혜원 특파원] "중국에 대한 홍콩인의 인식은 믿음에서 의심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굉장히 비관적이에요. 앞으로 30년 후 홍콩의 모습이요? 대다수가 중국의 보통 도시로 전락할 것으로 봅니다."
홍콩의 저명한 시사평론가 린허리(林和立·64)는 7월1일 홍콩 반환 20주년을 앞두고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가 유명무실화하고 있다며 작심한 듯 쓴소리를 쏟아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의 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다. 중국이 관영 언론을 앞세워 대대적으로 지난 20년의 치적을 포장하는 것과 달리 그는 홍콩의 향후 30년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덩샤오핑(鄧小平) 동지의 판단이 정확했다는 것을 20년 동안 증명했으며 일국양제는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이는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관영 신화통신 홍콩 분사 사장을 지낸 저우난(周南·90)이 홍콩의 중국 회귀 20주년(중국 언론에서는 회귀로 표현 통일)을 맞아 내린 호평이다. 저우난은 1980년대 덩샤오핑이 영국과 홍콩 반환을 놓고 수십 차례 회담을 열 당시 역사적 현장을 함께했고 이후 홍콩특별행정구 준비위원회에도 참여한 산증인이다.
홍콩을 대표하는 급진 좌파 성향의 시사평론가 린허리와 덩샤오핑 시절 홍콩이 중국으로 회귀한 과정과 그 이후를 지켜 본 원로 외교관 저우난의 가상 대담으로 홍콩 반환 20주년을 살펴봤다.
Mr. 쓴소리 린허리
홍콩 민주화 약속 안 지켜
30년 후엔 中 보통도시 전락
反中 젊은층 이민 러시 심각
원로 외교관 저우난
홍콩, 세계 금융·무역 중심지 성장
일국은 양제의 기초이자 전제
국가 주권 훼손돼선 안돼
-오랜 기억 속의 홍콩은 어떤가. 지금과 많이 다른가.
▲저우난: 홍콩에 처음 간 건 1951년이었다. 당시 홍콩은 상하이나 광저우보다도 훨씬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다. 홍콩의 경제는 1970~1980년대를 거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중국 내륙의 개혁·개방과 함께 맞물려 세계 금융과 무역 중심지로 성장한 것이다.
▲린허리: 덩샤오핑이 영국과 협상하던 1980년대에는 중국이 홍콩에 의존해 국제시장에 진입했다. 중국 공산당의 권력과 홍콩의 무게감이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홍콩 반환 후 20년 동안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심화했다.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경제도 외교력도 모두.
-'하나의 국가에 두 개의 체제를 허용한다'는 이른바 일국양제(一國兩制)에 대한 견해가 많이 다른 것 같다.
▲린허리: 1984년 겨울이었다. 홍콩 반환을 확정하는 '중영 연합성명'이 베이징에서 타결됐다. 덩샤오핑은 '항인치항(港人治港·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린다)' '고도의 자치'를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은 일국양제가 2047년까지 50년 동안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국양제는 홍콩의 주권이 중국으로 회귀한 이후 홍콩인의 정치적 불안을 해소하려던 정책이었으나 현재는 오히려 홍콩인이 가장 걱정하는 통치 원칙이 돼 버렸다. 중국은 일국양제를 온전히 추진하지 않았고 홍콩 민주화에 대한 많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저우난: 덩샤오핑은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와 협상할 때 '홍콩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를 늘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1982년 초 덩샤오핑은 1997년 홍콩을 무조건 반환받고 중국의 국가 주권을 훼손하지 않는 전제하에 홍콩의 자본주의 제도를 보존한다는 방침을 확고히 세웠다. 지난 20년의 실천을 통해 일국양제는 이미 큰 성공을 거뒀으며 미래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라고 굳건히 믿고 있다.
-그럼에도 일국양제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 커지고 있다. 왜 그럴까.
▲린허리: 사실 홍콩의 '고도 자치'는 이미 약해졌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초기 중국은 홍콩의 자치를 존중했다. 그러나 5~6년이 지나자 중국은 초점을 '일국'에만 맞췄고 '양제'를 대하는 비중은 점점 줄었다. 홍콩의 한 정치학 교수는 덩샤오핑이 일국양제 카드를 꺼낸 것은 홍콩이 아니라 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시기가 성숙하면 홍콩에 민주주의를 보장하겠다던 중국의 약속은 전혀 설득력이 없고 중국도 이를 잘 알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저우난: 중요한 것은 국가의 주권이 훼손돼선 안 된다는 점이다. '일국'은 '양제'의 기초이자 전제다. 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예측하고 대응을 잘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덩샤오핑이 제시한 초심을 잃지 않는 중요한 부분이며 홍콩 반환 전후의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내용이다. 홍콩이 만약 중국을 떠났다면 지금의 번영은 이룩하지 못했을 것이다. 홍콩은 제도적 우위를 계속 발휘해 중국과 상호 보완하고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 등을 통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
-2047년 홍콩 반환 50주년을 전후로 일국양제 폐지 내지 수정의 목소리도 나온다.
▲린허리: 홍콩의 범민주파는 2047년 6월30일 이후 일국양제는 자동적으로 실효성을 잃고 사회주의 제도가 홍콩에서 실행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친중국 세력인 건제파에서는 홍콩과 중국의 체제가 통합될지 아니면 일국양제가 이어질지는 홍콩이 남은 30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저우난: 홍콩은 떼 놓을 수 없는 중국 영토의 한 부분이다. 이 점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 변화를 원한다면 실현 불가능한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2047년은 물론 3047년, 4047년이 돼도 다르지 않다. 향후 일국양제 통치 원칙의 조정 여부는 당시 중국의 발전상을 봐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그때 중국은 더 발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홍콩을 대할 때 속 좁게 임하지 않을 것이다.
-홍콩이 경제적으로는 성장했지만 부의 양극화가 극심해지면서 사회 문제로 비화했는데.
▲린허리: '이민 러시'는 또 다른 사회 문제다. 사실 1984년 중영 연합성명 체결 이후 홍콩의 이민 숫자는 꾸준히 증가했고 특히 1989년 톈안먼 사태를 계기로 급증했다. 지금부터 2047년까지 또 한 번의 이민 러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 대부분의 홍콩인은 중국 정부가 일국양제를 지킬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캐나다와 호주 등 영어권 국가로의 이민 러시가 이미 2년 전부터 시작됐고 2047년에 가까워질수록 홍콩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베이징 김혜원 특파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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