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로 읽는 세계문학
최근 디아스포라(Diaspora) 담론은 인문학을 중심으로 정치경제, 역사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 담론은 조국(고향)에서 국외로 이민ㆍ이주하는 과정에서 표면화되는 현상을 텍스트 안팎으로 구심력과 원심력의 차원으로 읽어내면서 복합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환기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구한말 농민 계층을 중심으로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러시아 연해주, 중국의 만주지역, 북미의 하와이 등지로 이주ㆍ이동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는 "일제의 토지수탈정책에 따른 농민들의 일본행, 한국전쟁과 맞물린 결혼여성의 미국행, 전쟁고아ㆍ전쟁포로들의 제3국행 등이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대표적인 사례"이며 "한국정부의 공식적인 이민정책에 따라 북ㆍ중남미지역으로 향한 이민자들과 한국의 근대화과정에서 독일로 파견된 광부ㆍ간호사들도 조국 바깥으로 튕겨나간 디아스포라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약700만 명에 이르는 코리안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이다.(김환기,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 연구')
신기영의 설명에 따르면 디아스포라는 2300년 역사를 가진 개념이다. 유대민족이 기원전 250년경에 전쟁에 패한 뒤 고향을 떠나 각지에 흩어져 살게 되면서,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이 이산의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 처음 사용한 그리스어에서 나왔다. "전통적인 의미의 디아스포라는 추방, 퇴거, 슬픔, 피해 그리고 나약함 등과 연관된 개념이었다. 유대인의 세계 확산을 의미하던 디아스포라는 1960년대부터 민족이산을 겪은 다른 초국가적 집단들의 경험을 기술하는 보편적 개념으로 확장되었다".(신기영, '디아스포라론과 동아시아 속의 재일코리안')
신기영은 디아스포라는 1991년 학술잡지 'Diaspora'가 창간되면서 서구학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럼으로써 디아스포라는 본격적인 학술 담론의 대상이 되었고 디아스포라 개념은 민족, 종족, 인종, 이주 그리고 탈식민주의를 다루는 개별연구 분야 내에 새롭게 등장한 초국가적ㆍ지구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으로도 주목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디아스포라는 다양한 사례와 방법론을 중심으로 하는 학제간 연구를 전제로 한 기술적(descriptive and heuristic) 개념"이다.
문학평론가 정은경이 쓴 '밖으로부터의 고백―디아스포라로 읽는 세계문학'은 영혼의 국경선을 넘어 보다 넓은 시각에서 디아스포라 문학을 검토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정은경은 '디아스포라(이산인)'를 키워드로 한 그의 두 번째 책을 펴내면서 "이국땅에 살고 있는 '한민족 동포'뿐 아니라 다양한 이방인들을 만나 보자고 했던 여행길이 여기까지 왔다"고 고백했다. 비교적 짧은 평론들을 묶은 책이지만 서평집이나 비평집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만한 무게가 있다. 정은경의 진솔한 독서 경험이 깊은 성찰로 이어져 문학적 발견과 향유에 이름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은경은 로랑 세크직의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나날',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 우줘류의 '아시아의 고아',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 타예브 살리흐의 '북으로 가는 이주의 계절', 모신 하미드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노먼 메일러의 '파이트', 로힌턴 미스트리의 삼부작, 할레이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비톨트 곰브로비치의 '포르노그라피아', 찰스 부카우스키의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금희의 '세상에 없는 나의 집',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등 전 지구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이산의 고통스러운 현장들을 재구성했다.
정은경은 자신의 독서 경험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창밖에서 집 안을 들여다보면, 내가 알던 집이 아니다. '나'의 원근법을 뒤집어, '너'의 시선으로 보면 세상도 다르다. (중략) 나는 부유한 유대인이자 대문호였으나 나치에 의해 희생당한 슈테판 츠바이크의 절망을, 백인 여성을 욕망한 흑인 남성 무스타파 사이드의 비극을, (중략)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에 맞선 진짜 파이터 무하마드 알리를, 조선족 금희를, 청춘을 외설이라고 말하는 곰브로비치를, 소망을 잔혹동화로 바꿔 버린 아고타 크리스토프를, 그리고 '노력하지 마라'고 충고하는 술주정뱅이 마초 아저씨 찰스 부카우스키를 만났다."
정은경은 여러 페이지에 걸쳐 인간으로서 성찰과 예술가로서 감수성을 드러내 보인다. 아마도 부지불식간이었을 이 '노출'은 그의 평론집을 담론의 세계를 지나쳐 문학적 향유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만든다. 예를 들자면 로힌턴 미스트리의 삼부작을 읽고 쓴 '절망은 어떻게 신이 되었나'에서 정은경은 텍스트와 완벽하게 합일된 독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폭적인 공감과 감정이입, 일종의 반성을 거쳐 깨달음에 이르는 그의 태도는 평론집을 읽는 독자에게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시선과 물 속에서 물 밖을 보는 시선을 함께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신들의 나라, 크리슈나무르티, 오죠 라즈니쉬, 명상, 성자, 사원, 릭샤, 거지 떼와 불결한 사람들, 길거리에 버젓이 앉아 있는 소, 갠지스 강의 뼛가루, 요가. 이런 것들로 이루어진 '인도'는 (중략) 나에게 '영혼'과 '탈속'을 의미했다. 로힌턴 미스트리의 충격적인 소설은, 이런 인도에 대한 이미지가 얼마나 큰 오해이며, 또한 폭력인지를 그야말로 뺨을 후려치듯, 일깨워 주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 기대어, 서구 제국주의가 만든 동양에 대한 신비를 비판했던 내가 사실은 제국주의자의 시선으로 인도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97~98쪽)
정은경은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2003년 '세계일보'를 통해 등단하였다. 평론집으로 '지도의 암실', '디아스포라 문학' 등이 있고 연구서로는 '한국 근대소설에 나타난 악의 표상 연구'가 있다. 현재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부교수로 일하고 있다. huhball@
<밖으로부터의 고백/정은경 지음/파란/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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