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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영의 야간비행] 한국전쟁과 수복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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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영의 야간비행] 한국전쟁과 수복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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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과 한국전쟁은 한국 현대사가 응축된 키워드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한 뒤 한반도에 들어온 미국과 소련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을 멋대로 나눴다. 이후 한국전쟁을 거쳐 1953년 휴전이 성립하면서 '38선'은 휴전선으로 대체되었다. 이 때 38선 이북이면서 휴전선 남쪽인 지역이 생겼는데 이곳이 바로 '수복지구'(收復地區)다.


 수복지구는 잃어버렸다 되찾은 지역이라는 뜻으로 경기도 연천, 강원도 양양ㆍ고성ㆍ인제ㆍ양구ㆍ화천ㆍ철원 등이 해당된다. '한국전쟁과 수복지구'는 한국전쟁 전후의 현대사를 연구해온 한모니까 박사가 수복지구인 인제에서 1945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벌어진 일을 추적하고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전쟁 때 미국이 노획한 인제군 문서 5만장을 분석하고 인제 주민 70여명의 이야기를 채록해 이 책을 완성했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주목할 것은 체제전환에 있어 사람들의 삶의 변화다. 수복지구 주민들은 일제 때 '신민'이었다 해방 이후 북한의 '인민'이 되었고 유엔군사령부 통치기의 '주민'을 거쳐 남한의 '국민'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복지구 주민들은 오랫동안 불신과 차별의 대상이었고 살아남기 위해 빠르게 정체성을 전환했다.


 인제 사람들은 해방 후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황제의 백성에서 주권의 원천인 인민이 됐다. 북한은 인민이 일제의 신민이나 남한의 국민과 달리 주체성을 가지고 정치ㆍ사회ㆍ경제적 권리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지주의 토지를 몰수해 소작농과 자작농에게 나눠주는 토지개혁을 단행하고 가난한 농민을 인민위원으로 선출해 행정에 참여시켰다. 이를 통해 인제 주민들에게 봉건적ㆍ식민지적 사고를 버리고 애국주의적으로 생각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식민지의 잔재를 없애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는 북한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인제 사람들에게 일본은 보국의 대상, 북한은 애국의 대상이었다"면서 "보국과 애국을 위해 근검절약하고 수시로 물적ㆍ인적으로 동원되기는 마찬가지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제가 남한 땅으로 귀속된 뒤에도 주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남한 정부는 전쟁 전에 북한 인민이었던 수복지구 원주민들이 북한에 부역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하면서도 그들이 북한체제ㆍ미군정ㆍ남한체제를 비교할 것이므로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같은 생각은 수복지구 원주민들에 대한 차별대우로 이어졌다. 남한 정부는 도민증을 발급하고 호적을 복구하는 등 국민으로 편입하려는 조치는 취했지만 당시 시행 중이던 지방자치제를 수복지구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저자는 "인제 사람들은 국제적 역학관계에 의해 북한 인민이 됐지만 이 사실을 약점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며 "이들은 철저하게 침묵하거나 과거를 묵인하고 남한이 북한보다 낫다는 집단기억을 만들어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수복지구의 체제 전환은 구체제와의 단절과 연속의 과정이었다"며 "국가는 구체제와의 작별을 원했지만 주민들은 구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수복지구에 대한 연구가 의미 있는 이유는 남과 북이 통일됐을 때 수복지구에서 겪은 경험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38선 이북∼휴전선 남쪽'의 행정권은 현재 남한의 통치권이 행사되고 있지만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적이 없었던 만큼 통일을 이룬 뒤에도 남한이 당장 북한을 통치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유엔군 사령부가 휴전 후 1년이 훨씬 지난 1954년 11월 수복지구를 남한에 이양할 때 '법적 행정권'이 아닌 '사실상의 행정권'만을 넘겨줬다는 사실을 짚어준다.


 그는 책 말미에 "수복지구 주민이 겪은 복수의 역사경험에 대한 인식이 확산된다면 이곳은 '분단의 경계'지대에서 '남북통일의 시험지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바로 이 점이 상당한 분량에도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hykii@



<한국전쟁과 수복지구/한모니까 지음/푸른역사/3만5000원>




기하영 기자 hykii@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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