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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생이 날 성폭행했다" 신상 공개…알고보니

시계아이콘읽는 시간01분 33초

폭로와 모함 사이… 대학가 익명게시판 '대나무숲' 부작용도 많다

서울대 구독자 수 28만명… 재학생 공식 커뮤니티 사이트 2배 수준
일상 털어놓기부터 크고 작은 사건·사고 고발까지 활발
'신상털이', 무분별한 음해 및 모함 등 부작용도


"남학생이 날 성폭행했다" 신상 공개…알고보니 페이스북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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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연세대 2학년 박모(22)씨는 학교 생활에서 고민이 생길 경우 페이스북 익명게시판인 '대나무숲'을 가장 먼저 찾는다. 원하는 대답을 못 듣는 경우도 있지만, 익명인 만큼 실망도 덜하다. 이제는 고민이 없어도 매일 찾는 인터넷 게시판이 됐다. 박 씨는 "시시콜콜한 일상부터 학교 내의 크고 작은 사고까지 접할 수 있어 재미있다"며 "이제는 하루라도 접속하지 않으면 허전할 정도"라고 말했다.


대학가에서 학생들이 익명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페이스북 페이지 '대나무숲'이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교내 사건·사고 고발도 가감 없이 이뤄지고 의견도 나누지만, 익명인 까닭에 무분별한 '신상털이'와 각종 음해 및 모함 등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이름은 대나무숲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비밀을 외치던 궁정 이발사의 설화에서 따왔고, 지난 2013년 페이스북에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이 처음 개설됐다. 이후 연세대, 고려대 대나무숲 페이지가 만들어지면서 대부분의 대학들로 퍼져나갔다.


교내 학생 커뮤니티 사이트가 학교 메일 계정을 통해 인증해야 하는 등 가입 절차가 폐쇄적인 데 반해 간편한 페이스북을 통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용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의 구독자 수는 28만여명이다. 재학생 공식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SNULife)'의 회원 수(2015년 기준15만명)의 2배 수준이다.


대나무 숲에 올라오는 글은 주로 일상의 속내를 털어놓는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학교 내의 사건과 사고가 제보되는 경우도 상당하다.


최근 한국예술종합학교 신입생 환영 자리에서 있었던 알몸 장기자랑과 음주 강요 등이 '대나무숲'을 통해 폭로됐다. 지난 2015년 정모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가 수업 중에 "위안부는 성 노예가 아니다", 그 시대에는 모두가 친일파였다" 등의 문제적인 발언이 수면으로 드러난 것도 '대나무숲'을 통해서였다.


다만 익명성에 기대 거짓 사실을 폭로하거나 개인 정보를 유출하는 등의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7월 '한양대학교 대나무숲'에는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내용이 게시돼 특정 식당이 손해를 입어 죄송하다'는 사과문이 올라왔다. 이 식당의 아르바이트생들이 '내부고발자'를 자처하며 식당의 위생상태가 나쁘다고 제보한 것이 주목 받으며 불매 운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결국 성동구청이 조사에 나섰고, 그 결과 위생 상태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대 대나무숲에선 자신을 성폭행한 남학생을 고발하는 글이 올라왔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미 그 남학생의 신상은 공개된 뒤였다.


사실 확인 및 일정 수준의 필터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학생의 대표성을 띠지 않은 운영자가 하는 검열의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때문에 더욱 가감 없이 폭로하겠다는 '어둠의 대나무숲', '뽕나무숲' 등의 아류도 나타났다.


'익명' 온라인 게시판이라도 무분별한 '신상털이'와 거짓 사실 유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 형법상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와 마찬가지로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에관한법률(정보통신망법)에서도 온라인상의 명예훼손을 규정하고 있다.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익명이라는 전제가 있다 하더라도 거짓 사실 유포 등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준 사실이 확인되면 이는 명백한 범죄"라며 "페이스북의 파급력을 고려한다면 큰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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