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를 향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재판이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훈련 지원 관련 정황을 둘러싼 다툼으로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 등의 2차 공판에서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의 지난해 11월 이후 검찰ㆍ특검 진술조서를 공개했다.
이 부회장 측이 최씨의 존재와 영향력 등을 인지하고 이와 관련해 정씨를 지원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조서에 따르면 황 전 전무는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으로부터 '최씨가 아끼는 딸이 승마 선수인데 그 딸이 독일에서 전지훈련을 할 수 있도록 삼성이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는 진술을 했다.
박 전 사장은 또한 황 전 전무에게 "최씨는 VIP(박 전 대통령)와 친자매보다 더 친한 사람이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조서에 드러나있다.
지난해 정씨에 대한 지원 등 '국정농단' 의혹의 일단이 알려지자 삼성이 지원을 중단하려 했으나 최씨의 요구로 추가 지원을 검토했던 정황도 나타났다.
이와 관련, 황 전 전무는 "지난해 9월까지는 아직 (박 전) 대통령이 건재해서 그랬는지 단호하게 (지원을) 끊지는 못했다"면서 "프로젝트의 담당자로서 최씨에게 끌려다니면서도 해달라는대로 다 해줄 수밖에 없었다"고 특검 조사에서 진술했다.
특검은 이 부회장 측이 정씨에게 제공했거나 제공하기로 약속한 승마훈련 지원금 135억원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한 16억2000여만원, 미르ㆍ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원을 모두 뇌물로 규정했다.
특검은 향후 재판에서 이 부회장 측이 '비선실세 최순실의 딸'로 정씨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지원을 하거나 지원 결정을 했는지를 지속적으로 규명해 나아간다는 방침이다. 제공한 금품이 결과적으로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을 향한 것이라는 논리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 측은 일체의 지원 행위가 체육 발전과 문화 융성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의지와 요청에 따른, 대가성 없는 것이었다고 주장하며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둘러싼 권력 차원의 압력이 있었는지를 규명하는 것도 특검의 과제 중 하나다.
이와 관련, 특검은 지난 10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공판에서 2015년 7월 홍 전 본부장과 이 부회장 면담 자리에 배석한 채준규 전 국민연금 리서치팀장이 작성한 'CEO 면담 내용'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에 따르면 당시 면담에서 홍 전 본부장은 이 부회장에게 삼성 측이 발표한 합병 비율인 1(제일모직)대0.35(삼성물산)를 '1대0.42'로 조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삼성물산의 주식 가치가 낮게 평가돼 국민연금 등 삼성물산 주주들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 부회장은 이 같은 요구에 대해 "이미 발표된 것에 대한 사후 재조정은 없다"며 거절했다. 이 부회장은 이어 "플랜B에 대해 묻는다면 플랜B는 없다고 하겠다"면서 "이 정도 대가와 노력 치르고 또 한 번 합병을 추진한다는 건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번엔 무조건 성사시켜야 한다"고 했다.
채 전 팀장은 특검이 "결국 이 부회장이 공단 측에 합병에 찬성해 달라고 한 것 아니냐"고 묻자 "그런 취지로 이해했다"고 답했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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