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라는 단어가 언제부터인가 우리 귀에 친숙해지기 시작했다. 그 의미와 내용이 무엇인지 딱히 손에 잡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경제민주화라는 것이 소위 그간의 적폐청산과 민생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다. 그리고 지난 달 임시국회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각종 법률의 개정이 물 건너갔다는 것도 매스컴을 통해서 알고 있다.
경제민주화란 과연 무엇인가? 2008년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상위 1%가 99%의 이익을 독점하고 있는 현대사회'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경제민주화란 '소득불균형을 완화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소득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사회 각 분야의 개혁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기업의 경제민주화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으며, 상법 개정은 경제민주화의 첫걸음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상법 개정안은 10여 개에 달하는데, 다중대표소송제도, 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기업과 주주, 근로자 등 회사의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상생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다중대표소송제도 등 일부 내용에 대해 급진적이고,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재계를 중심으로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러나 상법 개정안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무리가 있다.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상법 개정안의 대부분의 내용은 파탄으로 끝난 박근혜 전 대통령의 2012년 대선 공약사항이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는가. 그리고 그동안 재계와 정부는 툭하면 경제가 위기라고 말해 왔는데, 우리 경제가 위기 아닌 때가 얼마나 있었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인 다중대표소송제도는 자회사의 불법행위로 인해 모회사가 손해를 입은 경우 모회사의 주주들이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회사를 대표하여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 특히 재벌들이 비상장 회사인 자회사를 이용해 불법행위를 저질러 모회사에 손해를 입힌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회사의 주주가 비상장 자회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어, 결과적으로 자회사의 이사들이 책임을 면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입법적 흠결로 지적돼 왔다. 다중대표소송제도를 인정할 경우 대기업들이 비상장 자회사를 이용해 비자금 조성 등 불법행위를 일삼는 것을 차단할 수 있는 장치라 할 것이다. 따라서 모회사 주주의 지분 요건을 얼마로 할 것이냐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 상법에 다중대표소송제도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
다음으로 집중투표제 의무화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집중투표제란 주식회사의 이사를 선출할 때 '1주 1표' 원칙이 아니라, 1주당 선임하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이다. 이는 대주주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해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사 선출 가능성을 높여주는 제도이다. 물론 이미 우리 상법에 도입되었지만, 현행 상법은 정관에 규정된 경우에만 집중투표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실제로는 실효성이 없었다. 따라서 대규모 기업집단 등의 상장회사에 대해서는 집중투표를 의무화하여 총수 일가의 전횡을 막아 경영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끝으로 감사위원 분리선출도 재계 등이 반대하고 있다. 현재 감사위원은 주총에서 선출된 이사 중에서 뽑기 때문에, 일단 대주주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어 독립성이 저해되는 구조이다. 따라서 이사와 감사위원을 분리하여 선출하자는 것이다. 외국계 투기자본의 경영권 흔들기의 우려도 있지만, 그동안 감사기구가 대기업 총수의 각종 불법행위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기업에 막대한 손해를 입힌 경우가 비일비재했음을 생각할 때, 독립성 확보 등 그 도입에 따른 긍정적 기능이 더 크다고 본다.
이번 대통령 탄핵심판에도 나타났듯이 '정경유착'의 폐습과 갈수록 심화되는 경제적 불평등이 우리 사회의 공동체의식을 허물고 있다. 따라서 한 달 남짓 후에 치러질 '장미 대선'에서는 '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법률과 제도를 개정하여 경제민주화를 강력하게 추진할 지도자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맹수석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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