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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괴수가 등장하는 정치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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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노 히데아키·히구치 신지의 '신 고질라'

[이종길의 영화읽기]괴수가 등장하는 정치 드라마 영화 '신 고질라'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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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신장 118.5m, 무게 9만2000t. 안노 히데아키(57)와 히구치 신지(52) 감독이 공동 연출한 영화 '신 고질라'에서 티라노사우루스를 닮은 괴수는 도쿄에 나타난다. 육중한 체구에서 비롯된 괴력과 입과 꼬리에서 내뿜는 방사능 열선으로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63년 전 혼다 이시로 감독이 만든 영화 '고질라(1954년)'의 재현이다. 이번보다 크기는 1/3가량 작았지만, 만장기염을 토하며 돌진하는 장군처럼 거침이 없었다. 이 고질라는 심해에 있던 고대 생명체였다. 미국의 수중 수폭실험으로 깨어나 일본에 상륙한다. 폐허로 변해버린 도시는 1945년 8월 미군의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연상케 한다. 이를 암시하는 장면도 있다. 미처 도시를 빠져나오지 못한 여인이 세 자녀를 끌어안고 흐느낀다. "이제 아빠 곁으로 가는 거야."

고질라는 괴수의 왕 정도로 치부할 수 없는 복잡한 캐릭터다. 일본인들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표상인 핵을 가리킨다. 터전을 빼앗긴 피해자이자 인간의 욕심과 날로 발전하는 과학에 분노한 신적 존재이기도 하다. 신 고질라에 부여된 의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심해에 버려진 핵폐기물에 의해 돌연변이가 돼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떠오르게 한다. 이 고질라는 꼬리를 통해 번식까지 한다. 원전사고의 위험성이 지금도 여전하다는 의미다.


[이종길의 영화읽기]괴수가 등장하는 정치 드라마 영화 '신 고질라' 스틸 컷

미국에 대한 적개심도 묻어 있다. 다국적군의 핵 공격을 승인하고 특별입법에 나서는 등 일본을 다시 한 번 핵의 위협으로 몰아넣는다. 안노와 히구치 감독은 이 신들 사이에 원자폭탄으로 폐허가 된 도시의 흑백사진 한 장을 끼워 넣었다. 미국에 대한 트라우마와 반세기 이상이 흘렀지만 여전히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일본 정부에 대한 원망이다. 고질라가 출현했는데도 정부에서는 탁상공론이 난무한다. 다급해진 총리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거대생물의 상륙은 불가능합니다.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질라는 가마타 역에 나타난다. 교통망은 순식간에 마비되고, 재산과 인명 피해가 속출한다. 정부는 어떤 대응도 하지 못한다. 뒤늦게 조사반을 꾸리고 대책 관련 법안을 검토하지만 계속 난항을 겪는다.


안도와 히구치 감독은 이런 문제들을 속독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간결하게 펼쳤다. 수상관저, 법무성, 외무성 등 정부 부처들을 다룬 복수 신들에 10초씩도 할애하지 않는다. 어떤 곳이 곪았는지를 살피지 않아도 될 만큼 관료사회 전체가 안이하고 무능하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관객이라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부실한 대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뒤늦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나온 박근혜 전 대통령이 황당한 질문으로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불을 지폈으니 말이다.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신 고질라 속 총리는 박 전 대통령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도쿄가 초토화되자 서둘러 헬리콥터에 오르며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려고 한다.


[이종길의 영화읽기]괴수가 등장하는 정치 드라마 영화 '신 고질라' 스틸 컷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는 사람은 젊은이들이다. 가까스로 고질라를 퇴치하는 방법까지 고안해 사태를 해결한다. 얼핏 젊은 층들을 옹호하는 듯하지만, 이는 젊은이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일종의 메시지다. 일본은 2015년 선거 연령을 만 20세에서 만 18세로 낮췄다. 그러나 이듬해 참의원 선거의 전체 투표율은 54%로 역대 네 번째로 낮았다. 특히 30~50대 유권자들이 평균 이하를 기록했다. 반면 65세 이상의 투표율은 20~30대보다 월등히 높았다. 지속적인 투표율 감소는 일본 시민사회에서 정치 참여 의식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고질라는 젊은 층의 정치 참여를 호소하는 정치 드라마다. 5월9일 제19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악순환을 막을 수 있는 힘은 온전히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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