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판결 불복" VS "이미 승복"
[아시아경제 이민찬 기자] "제게 주어진 대통령으로서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저를 믿고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서울 삼성동 사저로 이동한 뒤 내놓은 이 짧은 메시지를 두고 정치권의 해석이 분분하다. 박 전 대통령의 대변인 역할을 한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은 "표현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은 일제히 헌재 결정에 대한 불복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한국당 일각에선 "불복이라고 평가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태극기집회에 줄곧 참여했고 전날 박 전 대통령 사저 앞에도 모습을 드러냈던 김진태 한국당 의원은 13일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어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께서 청와대를 나와 사저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미 승복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당 대선주자인 김진 상임고문도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검찰수사를 앞둔 사람으로서 사실관계를 다투겠다고 하는 정도를 갖고 불복이라고 평가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국당 소속인 심재철 국회부의장은 이날 '남에게는 승복하라면서 자신은 불복이라면'이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사저에 도착한 박 전 대통령은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말함으로써 승복한다는 말 대신 오히려 불복을 암시했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한국당에서 이 같은 '사저 발언'을 공개 비판한 것은 심 부의장이 처음이다.
심 부의장은 박 전 대통령이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의 국회 통과 후 '헌재 판결에 승복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세종시 수도이전 위헌 결정 때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곧 헌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고 언급한 것을 예로 들며 박 전 대통령의 태도를 지적했다.
야당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이를 헌재 결정에 대한 불복이라고 규정했다. 추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퇴거하는 그 순간까지 국민 앞에 뉘우친단 말 한마디는 고사하고 진실을 운운하며 사실상 불복이나 다름없는 선언을 했다"고 지적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도 이날 "승복·반성·통합 메시지는 끝내 없었다"며 "국민은 실망했다"고 말했다.
대선주자들도 비판 의견에 팔을 걷어 부치고 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측 박광온 수석대변인은 "헌재의 탄핵 결정에 불복하는 것이라면 국기문란 사태"라고 규정했다. 안희정 충남지사 측 박수현 대변인도 "박 전 대통령은 민의에 불복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꼬집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이날 "헌재 결정 불복은 법치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며 헌법에 대한 배신"이라고 지적했다.
이민찬 기자 lee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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