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영화 '친구'](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16063010104764455_2.jpg)
아홉 번째 '등' 이야기다. 끝나간다. 다음에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 목이나 허리, 가슴이나 배가 되리라. 등 이야기를 마친 다음 결정하겠다. 혹시 독자께서 의견을 주시면 반영하겠다. 아무튼 등에서 멀지 않은 몸의 어떤 부분에 대해 쓸 생각이다. 하지만 아직은 등에서 눈을 떼지 말자.
2001년에 나온 영화 <친구>는 내 또래들에게 영향을 크게 주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동기들의 인터넷 카페는 곽경택 감독의 영화가 성공한 다음 문을 열었다. 거기서 숱한 친구를 다시 만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한참이 지난 뒤에. 우리는 술을 마시고 영화에 나오는 노래(Bad Case of Loving You)를 부르며 옛날 생각을 했다.
1978년에 나온 이 노래는 원래 영국 가수 로버트 파머가 불렀다. 그러나 우리는 배철수ㆍ구창모가 속한 그룹 '송골매'에서 건반악기를 다루던 이봉환의 목소리로 더 자주 들었다. 송골매는 KBS의 '젊음의 행진', MBC의 '영 일레븐'에 출연해 이 노래를 불렀다. 파머의 노래는 유오성과 장동건 등이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겨드랑이에 낀 채 시장골목을 달리는 장면과 매우 잘 어울렸다.
영화는 친구의 우정을 다루지만 잔인한 장면이 지나치게 많이 나와서 가족과 함께 보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칼부림, 선혈, 비명과 신음, 마약 같은 강한 소재와 동기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미남배우 장동건도 이 영화에서는 태연히 남의 힘줄을 끊는 폭력배다. 유오성이 성공(?)을 해서 새 부하들을 맞아 교육할 때 이런 얘기를 한다. 말하자면 칼부림 기술을 가르치는 장면이다.
"얇은 칼은 뼈 때문에 부러지기 쉽다. 그래서 회칼을 쓴다. 칼 길이는 15㎝면 충분하다. 칼이 폐를 관통하면, 허파에 바람이 나면 90% '학실하게' 절명한다. 몸속에 칼이 들어왔다는 것, 칼 맞았다는 걸 느끼게 해줘야 한다. 진짜 칼잡이는 가슴보다는 뒤에서 폐를 노린다."
살벌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야쿠자들이 왜 등에 문신을 새기는지 짐작한다. 그들의 등에 눈을 부릅뜬 사람 얼굴을 새겼다면 가장 어울릴 것 같다. 생각해보니 사람의 등은 참으로 약하구나. 심하게 다치면 팔다리를 못 쓰게 되는 척추신경은 인간의 가슴보다 등에서 가깝다. 그리고 인간의 등에는 늘 공포와 불안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양아치들이 선량한 사람을 겁줄 때 괜히 "집에 갈 때 뒤를 조심하라"고 하겠는가.
누군가 뒤를 밟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머리털이 쭈뼛 선다. 미행은 그래서 폭력이다. 불편한 누군가를 마주쳤을 때, 우리는 그의 뒤에 누가 도사렸는지 알고자 노력한다. 탐정과 수사관은 용의자의 '배후'를 캐려 한다. 사람의 등 뒤에는 때때로 비밀과 음모가 숨어 있다. 거대한 음모의 뒤에는 거대한 권력이 아나콘다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다. 저주받은 등이여!
그러나 또한 그곳이 하염없이 약함에 인간의, 아니 모든 생명의 아이러니가 있느니. 거북의 연한 살을 등껍질이 덮고 있지 않은가. 가장 약한 곳을 강한 것으로 덮으니 이 또한 순리여라. 거북의 등껍질은 몹시 단단해 흠을 내기 어렵다. 그래서 은허(殷墟)의 갑문(甲文)은 대개 거북의 배껍질에 새겼다. 은인(殷人)은 점을 쳤으나 요행이 아니라 순리를 구하였다. 인간이 순리를 따름은 곧 지성의 작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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