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국제부 기자]북한이 김정남 암살 사건에 대해 열흘만에 입장을 발표한 것에 대해 내부 동요를 잠재우기 위한 목적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북한이 김정남 암살 사건과 관련, 한국 주도하에 미국과 말레이시아가 함께 짜낸 음모라고 비난한 담화문은 내부 동요에 대처하려는 조치라고 풀이했다.
북한은 김정남이 지난 13일 숨진 이후 열흘 동안 침묵하다가 이날 '조선법률가위원회 대변인 담화' 형식으로 첫 공식 반응을 내놨다.
북한 조선법률가위원회 대변인은 담화문을 통해 "우리 공화국 공민이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갑자기 쇼크상태에 빠져 병원으로 이송되던 도중 사망한 것은 뜻밖의 불상사"라고 밝혔다. 이어 "명백히 남조선 당국이 이번 사건을 이미 전부터 예견하고 있었으며 그 대본까지 미리 짜놓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WSJ은 김정남의 암살을 다룬 해외 뉴스가 급격하게 북한 내부로 유입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며 "북한이 수십 년 동안 독재 리더십에 대한 불만을 야기할 수 있는 외부 뉴스와 정보를 차단하기 위해 견고한 장벽을 쌓아왔지만 최근 북한에 송출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메모리 카드나 DVD 등의 기기가 널리 퍼지면서 이러한 차단막이 약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담화문 발표 자체가 위기를 맞은 북한 정부의 실태를 노출하고 있다"며 "북한 정부가 김정남의 존재나 암살을 감추는 데 실패하면서 따로 조치를 취할 필요성을 느끼고 결국 내부 북한인들을 겨냥한 담화를 냈다"고 해석했다.
말레이시아 정관계도 이번 북한의 담화문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세리 나스리 아지즈 말레이 문화관광부 장관은 북한이 김정남 암살 사건 배후에 말레이시아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두고 북한을 '깡패국가'(rogue nation)라고 표현하며 비난했다.
나스리 장관은 "북한은 말레이 당국이 국제적으로 공인되는 형사수사 절차를 준수하고 있다는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며 "북한은 반쪽 진실과 반쪽 거짓말 속에서 망상을 하고 있는데 말레이는 이번 사건에서 아무 역할을 한 게 없다"고 강조했다.
나스리 장관은 북한을 '예측할 수 없는 나라'라고도 꼬집으며 말레이시아 국민을 향해 북한 관광을 자제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연립정부를 주도하는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 청년위원회와 말레이시아화교연합회(MCA)와 말레이시아인도회의(MIC) 등은 이날 오후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을 방문해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국제부 기자 int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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