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와 프랑스 대선 등의 현안에 묻혀 관심을 덜 받았던 그리스 위기가 다시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 도화선은 최근 3차 구제금융 집행을 놓고 불거진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과의 갈등이다. 자국중심주의의 확산 역시 그리스 사태를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남유럽 부채위기로 최악의 위기를 겪었던 그리스는 2010년부터 국제채권단(트로이카-EU·ECB·IMF)의 구제금융으로 연명하고 있다. 그런데 1, 2차 구제금융 집행에 참여했던 IMF는 3차 구제금융 지급을 앞두고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이 그리스의 부채를 먼저 줄여주지 않으면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아무리 구제금융으로 지원을 해줘도 그리스의 부채가 너무 많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논리다.
반면 독일을 비롯한 유럽 주요국가들은 그리스의 부채 탕감에 소극적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 네덜란드가 그리스 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정치 리스크를 키우는 일을 원하지 않고 있다고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ECB에 상환해야 하는 4월 만기 부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그리스 부채는 오는 7월이 만기다. 그리스의 7월 디폴트설이 나오는 이유다. 국제채권단은 각국 선거 일정 등을 고려하면 이달 안에는 협상 타결을 위한 방안을 마무리 짓기를 원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유로존 재무장관(유로그룹)들을 포함한 채권단 대표들은 이날 밤 늦게까지 그리스 사태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지만 의미있는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 의장은 "부채탕감뿐 아니라 재정수지 흑자 등 다른 개혁안들을 놓고서 이견이 컸다"고 밝혔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IMF의 참여가 없으면 구제금융 프로그램은 죽은 것"이라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그리스는 국내총생산(GDP)의 3.5% 재정수지 흑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그리스가 수년래 이를 달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IMF는 그리스의 현 부채수준을 고려하면 이는 달성 불가능하다며 맞서고 있다.
유로존 구제금융 기금인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의 클라우스 레글링 총재는 이날 FT 기고에서 IMF가 그리스 문제를 확대 해석해 우려를 키우고 있다면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IMF가 "그리스 채무가 폭발할 것"이라며 최근 내놓은 보고서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투자자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제 채권단간 합의가 요원하다는 소식에 그리스 2년물 국채금리는 10%를 돌파하며 8개월 사이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채금리가 불과 2주만에 4%포인트 가까이 급등했다. 그리스 국채시장에서는 1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투자자들이 그리스 디폴트 위기에 대비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목인 기자 cmi072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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