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원 베팅' SK하이닉스 "인수제안서 제출"…삼성전자, 시장 변화 가능성 예의주시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일본 도시바의 반도체(낸드플래시) 사업 지분 인수 경쟁이 본격화한 가운데 미국의 웨스턴디지털(WD)이 유리한 고지를 형성했다는 관측이 흘러 나오고 있다. '3조원 베팅설'로 관심을 집중시켰던 SK하이닉스는 기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대응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8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 신설회사 지분 19.9%를 놓고 벌이는 경쟁에서 WD가 관심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WD는 도시바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회사로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 분사 결정 이전부터 유력한 지분 인수 기업으로 떠오른 회사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6.6%, 도시바 19.8%, WD 17.1%, SK하이닉스 10.4% 등이다. WD가 인수전에서 승리할 경우 낸드플래시 시장 2위 기업과 3위 기업의 힘이 합쳐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산술적으로 보면 도시바와 WD의 점유율 합계는 36.9%로 삼성전자 점유율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도시바 지분 인수전에서 WD가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분석은 이전부터 양사가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 일본의 반도체 자존심인 도시바 지분을 한국 기업에 넘기는 것에 대한 정서적 장벽 등이 이유로 분석된다.
하지만 도시바가 반도체 사업 분사 이후 일부 지분(19.9%)을 매각하려는 이유는 복잡한 이유가 담겼다는 점에서 섣불리 인수전의 유불리를 단정해서는 위험하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반도체 사업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바의 원전사업에 따른 자금 부담 해소를 위해 일부 지분을 내놓으려 한다는 얘기다.
도시바는 반도체 사업을 접을 생각이 없으며 지분 매각에 따라 확보한 자금으로 기술 개발 등을 통해 반도체 사업의 내실을 다지려는 구상을 감추지 않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 지분인수를 통해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였던 낸드플래시 부문의 경쟁력, 특히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거액의 자금이 필요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신중한 행보로 상황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의 낸드 사업에 대한 지분 인수 제안서를 마감일인 지난 3일 제출했다"면서 "이 제안서는 구속력이 없는(Non-binding) 것으로 최종 입찰 참여 여부는 미정"이라고 공시를 통해 밝혔다.
SK하이닉스의 입찰 참여는 반도체 사업을 키우겠다는 SK그룹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도시바 지분 인수전에 뛰어든 만큼 최선을 다해 경쟁에 임할 수밖에 없다. SK하이닉스는 인수전 경쟁상대와 비교할 때 인수자금 등 다양한 측면에서 경쟁력을 지녔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일본 측 기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다른 관점으로 이번 사안을 바라보고 있다. 낸드플래시 부문의 2~4위 업체가 다양한 시나리오로 힘을 모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만큼 상황 변화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다만 WD의 도시바 인수전 유리 전망은 말 그대로 전망에 불과하고, 설사 WD가 도시바 지분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당장 낸드플래시 시장의 판도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도시바의 이번 매각은 일부 지분을 넘겨주는 선에서 경영참여를 허용하는 수준으로 사업 자체의 매각과는 의미가 다르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WD가 유리한지, 불리한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면서 "도시바와 WD의 시장점유율 합계를 토대로 삼성전자를 위협할 것이란 전망 역시 앞서나간 해석"이라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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