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시민은 삶에 희망을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김부겸이 말하는 공존의 정치
김부겸 인생의 큰 형…노무현, 제정구
예측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한 투쟁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홍유라 기자]광장의 구호는 제각각이었다. 가족 단위로 모인 시민들과 쌀값 대책을 요구하는 농민들, 성과연봉제 등을 반대하는 공공단체, 해고 노동자들은 한목소리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지만 주장하는 내용은 조금씩 달랐다. 지난해 촛불 광장에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뒤를 밟으며 바라본 풍경이었다. 김 의원은 야권에서는 난공불락이라고 불렸던 대구 수성갑에서 당선된 의원이다. 야당 확장성의 상징이지만,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지면서 관심도가 떨어진 대권후보다.
◆인파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민주당은 지난해 11월12일이 되어서야 당 지도부 전원이 참석하는 형태로 촛불집회에 합류했다. 당 차원에서 진행된 규탄대회에 김 의원 등 소속의원들도 대거 참여했다. 그날 행사가 끝날 무렵 김 의원이 주변에 있던 다른 의원과 함께 자리를 뜨는 모습을 봤다. '이 두 사람은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궁금증이 들어 이들의 뒤를 밟았다.
두 사람은 청계광장을 빠져나와 시민들이 모여 있는 거리 곳곳을 다녔다. 종각역 거리에는 각 대학교를 상징하는 깃발을 든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들을 보며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물살을 거스르는 물고기처럼 시민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했다. 이야기를 나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밤 김 의원과 함께 서울 곳곳을 누볐던 동료 의원에게 전화로 물었다. 왜 그렇게 돌아다녔는지,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김 의원의 길동무였던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거리마다 사람들의 주장은 달랐다고 전했다. 하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온 이유가 박 대통령의 퇴진 하나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민 의원은 광장을 지켜본 뒤 다음날 SNS를 통해 "여의도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국민의 분노와 배신감이 수십 수백 배에 달하고 있다는 것을 못 느꼈다면 그는 '정치적 문맹'"이라면서 "광장은 큰 소리로 요구하고 있다. 우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이 인파를 헤쳐가며 들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그로부터 한참 뒤에 들었다. 개헌과 야권공동 경선 등을 주로 다른 19일 인터뷰 기사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소개한다.
김 의원에게 촛불 광장에서 무엇을 봤는지 물었다. 그의 답변은 이랬다.
"결국은 우리 삶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광장의 시민들은) 삶에 희망을 만들어 달라고 말하고 있다. 삶, 희망을 가로막고 있는 게 무엇인가? 불공정, 불평등, 특권, 반칙 여기에 질린 것이다. 권력이든 재벌이든 돈이든 기득권은 절대 자신들이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양보하지 않으려고 한다. 기성세대들은 이 같은 결과를 자신들의 열심히 살아서 만든 기회라고 여긴다. 이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를 두고 절규를 하는 것이다."
그의 주장이 흥미로웠던 것은 단순히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입장만 바라보지 않고, 기득권을 내놔야 하는 이들의 입장까지 헤아렸다는 점이다.
◆정치의 정의= 흔히 정치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 '사회적 희소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치라는 제도가 가진 의미를 제대로 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게 만들지만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된다. 하지만 김 의원 정의는 달랐다. 그는 "정치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있도록 넉넉한 가치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하는, 즉 공존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정치였다.
"냉정하게 볼 때 우리가 그들(새누리당)의 존재마저 부인할 권리는 없다. 잘못에 대해서 따질 수 있다. 그 잘못에 대해서는 때가 되면 국민이 심판할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축출하거나 깨부술만한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상대적으로 변화된 세상을 인정하고 따라올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이 정치의 영역이라고 본다."
"공존이라는 것은 좋은 게 좋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한다는 원칙을 합의하고, 그 과정에서 시대에 뒤떨어졌거나 반동적 행위를 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잘못했다고 인정을 한다면 다시 따라오게 해야한다."
그는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이 '진실과 화해 위원회'에 대해 이야기했다. 만델라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만들어 참혹한 과거사의 진실을 규명하면서도, 사회의 존립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남아공의 흑백 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70년에 걸친 흑백 분리 정책으로 사실상 갈기갈기 찢어졌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만델라는 어떤 전략을 택했나. 과거 흑인들이 정의를 세우려 했다면 백인들을 다 쫓아내야 한다. 감옥 보내고 책임 묻고 몰아냈어야 했다. 그럼 남아공이라는 나라 자체의 존립은 무너졌을 것이다. 만델라의 선택은 대타협이었다. 과거사를 덮을 수 없으니, 잘못을 저지른 자들에게서 자술서를 받았다. 하지만 처벌은 하지 않았다. 일종의 사회적 관용을 베풂으로써 백인들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할 수 있도록 했다. 그게 지혜라고 생각한다."
김 의원은 인터뷰 내내 공존의 정치를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공존의 정치가 자리 잡지 못했던 원인을 승자 독식형 정치 구조에서 찾았다.
"대통령을 잡은 쪽이 거의 모든 것을 가져갔다. 심지어 반민주적인 국가 운영에 대해서도 용서가 되는 일들이 있어왔다. 이런 것들을 견제해야 할 야당과 언론은 제 기능을 못 했다. 그만큼 힘이 안 되기도 했다. (최순실 게이트는) 기다리고 기다리다 터진 것이다."
그가 개헌 등을 주장하는 것은 제도적 틀이 바뀌어야 악순환의 고리를 깰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나는 민주당이다=김 의원은 과거 자서전 '나는 민주당이다'라는 통해 자신이 소속 정당에 대해 갖고 있는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멍에와도 같은 꼬리표가 있다.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경력이 그것이다. 실제 그는 16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경기도 군포에서 당선된 전력이 있다. 이후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당선되기도 했고, 민주당 깃발로 대구로 옮겨가 낙선의 고배를 연달아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한나라당 당적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91년 김대중·이기택 두 공동 대표가 있는 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박지원, 노무현 두 대변인 밑에서 부대변인으로 일했던 시절이다.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김대중 총재가 정계를 은퇴한 뒤 1995년 정계에 복귀했다. 정계를 복귀하면서 민주당으로 복귀한 것이 아니라 새정치국민회의라는 당을 새롭게 창당했다. 국민이 첫 지자체장 선거에서 조순 후보를 서울시장으로 당선하며 지지를 보였는데, 왜 이런 정당을 깨느냐고 반발했다. 그때 같이 민주당에 남았던 사람이 김원기, 노무현, 제정구, 유인태, 원혜영, 김정길 이런 분들이다. 당시 우리는 민주당을 지키고 지역주의를 넘어서는 정치를 하자고 해서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를 만들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당시 총재가 DJP 연합을 했다. 오른쪽은 채웠는데 왼쪽이 허전하니까 통추를 깼다. 그때 김원기, 노무현, 김정길 이런 분들은 정권 교체를 해야겠다면서 떠났다. 그때 당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다 보니 계속 민주당이었다. 그런데 대선에서 조순 후보가 덜컥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와 합당을 약속했다. 쉽게 말해 다니던 회사가 경쟁 회사에 M&A 된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한나라당 창당 멤버를 하게 됐다. 민주당에 남아 있어서 자연스럽게 한나라당이 된 것이다. 복잡한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한나라당 출신이라고 꼬리표를 붙이는데... 뭐 그렇다고 어떻게 하겠나."
"2003년에 대북송금특검에 반대하면서 한나라당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다. 그때 나온 게 독수리 5형제(이부영 이우재 김부겸 김영춘 안영근)다. 이들과 민주당을 탈당한 이들, 개혁당이 합해서 만든 게 열린우리당이다. 당시 정치는 보스들이 정당을 허물고 다시 만들고 하는 시절이었다. 그때 정치에서 배운 것은 정치를 통해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짓밟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진보든 보수이든 국민을 위해 쓸 수 있는 정책적 묶음은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세상을 보는 눈과 태도가 중요하다. 양쪽이 얼마든지 대화하고 타협을 해야 한다."
◆인생의 형, 노무현과 제정구=김 의원은 정당 경험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제정구 전 의원의 이야기가 여러차례 등장했다. 김 의원은 두 사람에 대해 정치를 배웠고, 정신적으로도 의지했다고 밝혔다. 제 전 의원으로부터는 평생 과업처럼 지켜왔던 공존의 정치를 배웠고, 노 전 대통령에서는 옳다고 여기는 것이 있으면 있는 힘껏 싸워야 한다는 투지를 배웠다고 말했다.
"제 전 의원은 빈민 운동을 하셨던 분이라 담백한 분이었다. 삶을 마감할 때 유언처럼 남긴 말이 있다. 21세기 정치는 상대편을 밟아서 하는 정치는 불가능하니, 상대편과 공존하고 서로 함께 손잡기 위한 그림을 당부하셨다."
"노 전 대통령은 딱 10년 선배다. 다른 것보다 열정, 투지 이런 것들을 배웠다. 예를 들면 '정의가 있으면 대가리 박고 싸우는 거지 뭘 쭈뼛해 이 자식아' 이런 것들을 가르쳐줬다. 신뢰를 보이면 그 신뢰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배웠다. (웃으며) 가끔 쥐어박으며 서울대 운동권 이 녀석하고 쥐어박기도 했다."
"열 살, 열두 살 많은 형이니까 집안에서 보면 제일 큰 형이랑 같은 연배들이다. 어렸을 때 그런 적 없나. 동내에서 애들이 때리면, 형에게 맞았다고 이르지 않나. 내게는 그런 든든한 형들이었다. 정치를 가르쳐준 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지만 내게는 선생님 같은 분이었다. (그런 면에서) 노 전 대통령이나 제 전 의원은 인생의 형들이었다."
김 의원은 대선 자체를 세상을 변혁하는 과정으로 소개했다.
"선배들이 다 떠났고 이제 제가 정치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겠나. 마지막으로 열정을 보이고 가능성을 열어야지. 힘이 부족하더라도 원칙이라든지 흐름을 깨지지 않게 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김부겸이라는) 한 개인이 대통령이 되고 안 되고는 문제가 아니다. 대선이라는 과정 자체가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누구에게 기회가 가더라도 적어도 그다음 대한민국은 예측 가능해야 한다. 상대의 존재를 부정해서도 안 된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홍유라 기자 vand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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