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일본을 방문해 도쿄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있다. 올해 오십을 바라보는 베이비붐 마지막 세대인 필자에게 인생의 반환점 같은 여행이다. 며칠간 둘러본 일본의 단편적인 인상은 철도의 나라, 외국인의 나라, 라면의 나라다.
지금 머무르고 있는 이케부쿠로는 JR 야마노테선, 사이쿄선, 지하철 마루노우치선, 유라쿠쵸선, 후쿠도신선, 사철(私鐵)인 토부토죠선, 세이부이케부쿠로선 등 수많은 노선이 연결돼 있다. 신주쿠, 시나가와, 동경역, 우에노 등 부도심에 거미줄처럼 연결된 철도망은 도쿄 어디에나 10분 안에 접근할 수 있게 한다. 또 대부분의 부도심에 있는 시외버스 정류장은 지방과 대도시를 연결한다. 이러한 교통 인프라가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리는 일본의 장기 경기침체 국면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요인이 아닌가 싶다.
일본의 길거리에는 외국인으로 가득 차 있다. 지하철, 상점가, 학교 등 어디서든 외국인을 만날 수 있고 웬만한 부도심에서는 일본어만큼 외국어가 흔하다. 웬만한 음식점, 호텔의 종업원들 중 상당수는 외국인이다. 저출산과 노령화로 인구절벽을 먼저 경험한 일본은 외국인을 적극 유치함으로써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우수한 외국 인력의 적극적인 유치를 통해 침체되고 있는 경기를 활성화 시킬 정책이 요구된다.
일본 하면 떠오르는 것은 역시 라면이다. 홋카이도의 미소라면, 도쿄의 쇼유라면, 하카타의 돈코츠라면은 유명하다. 홋카이도의 삿포로는 라면의 도시다. 일본 된장인 미소를 베이스로 그 위에 파, 마늘, 숙주와 같은 야채를 곁들여 먹기도 한다. 유명한 체인으로는 아지노토케이다이 (味の時計台)와 멘야무사시(麵屋武藏)가 있다.
두 번째로 대표적인 라면은 후쿠오카의 하카타라면이다. 하카타라면의 특징은 돼지뼈(돈코츠)로 우려낸 국물 맛이라 할 수 있다. 유명한 이치란(一蘭)과 잇뿌도 (一風堂)가 하카타라면 류에 속한다. 이치란 라면은 '혼밥하기' 좋은 형태와 독서실 같이 칸막이로 나눠져있어 프라이버시가 존중되고 있다. 특히 반숙 계란은 일품이다.
도쿄의 쇼유라면은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라면이다. 삿포로의 미소라면처럼 짜지도 않고 하카타라면처럼 느끼하지도 않다. 쇼우라면은 간장을 베이스로 돼지뼈, 닭뼈, 해산물, 야채 등을 넣어 만들어서 깊으면서도 산뜻한 맛이다. 도쿄에 본사를 두고 있는 타이메이켄의 버터쇼유라면이 유명하다. 본디 라면은 중국에서 건너온 음식이지만 일본은 외래문화를 자신의 것으로 승화시키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나라이다.
17세기까지 쇄국정책을 펼친 일본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도공들을 납치한 마츠라시게노부(松浦鎭信)가 자기 영지인 북큐슈 나가사키현 히라토섬에 이들을 집단 거주시켜 '고려 마을(高麗町)'을 만들어 찻잔류와 접시류를 만들게 했다. 20년이 지나서는 조선 백자류와 상회자기(上繪磁器)를 구워내어 '히라토나카노도자기(平戶中野燒)'로 널리 호평을 받게 됐다. 이 도자기로 유럽에 '자포네즈리(Japonaiserie)'를 유행시키면서 중국 도자기를 제치고 일본 도자기를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려놓기도 했다.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새로운 자기 것을 만들어 내야 가장 가치 있는 상품으로 자리매김 하게 된다. 어쩌면 일본의 개방성이 일본만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디지털 시대에는 글로벌 소비자의 기호를 빨리 파악하고 이들이 싫증 내기 전에 상품화해 판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번 여행을 통해 새삼 느낀다.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