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장 어두웠던 대한민국을 밝힌 빛
-맞습니다, 촛불 든 이 나라의 주인 바로 당신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금보령 기자] 올해의 인물은 단연 촛불을 든 '광장의 시민들'이다. 지난 10월29일 1차 집회를 시작으로 매주 토요일 9차례나 이어진 촛불집회는 비폭력 평화 시위로 주목받았다. 수백만 명이 모여든 촛불집회에서는 한 차례의 폭력 사태도 없었다. 성숙한 시민의식에 더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또 다른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광장의 시민들이었다.
촛불집회를 주최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1600여개 시민단체가 모여 만들어졌다. 안진걸 퇴진행동 공동 대변인(45·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연인원 1000만명이 넘는 대규모 항쟁이 비폭력, 평화적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시민들 덕분에 우리는 매일, 매주 승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안 대변인은 "저희 주최 측은 이번 촛불집회에서 리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국민주권 운동의 동반자이자 함께하는 기획자"라고 말했다.
안 대변인은 수백만 명이 한 공간에 모여 있었지만 단 하나의 충돌도 없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이번 집회가 한국 사회를 발전시키는 엄청난 계기와 동력이 될 것"이라며 "아무리 단체들이 헌신적으로 한다 해도 시민들의 압도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이 운동은 오래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재벌들이 떨어뜨리고 짓밟은 국격과 민주주의를 우리가 일으켜 세우는 과정"이라며 "반드시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도수현 서울도시철도공사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장(52)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4차 촛불집회 때는 공사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승하차 인원(22만여명)이 광화문역을 이용했다. 여의도 불꽃 축제 때 여의나루역 승하차 인원이 15만명 정도다.
도 역장은 "밀려서 내려오다 보면 잘 안 보이는 데다 촛농까지 녹아 있어 계단이 제일 위험한 공간"이라며 "앞사람을 밀지 말라고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안내 표시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미리 알아봐서 집회 전 만들어 붙이기도 했다.
그는 22년간 근무하면서 이처럼 평화적인 시위는 처음 봤다고 했다. 안내방송을 하고 있으면 사탕, 초콜릿 등을 주고 가는 시민들도 있었다. 도 역장은 "고생한다고 해주시니까 사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하다"며 "이번 집회에 유모차가 많이 왔는데 같이 들고 올라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시민 문화가 많이 성숙해졌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판소리 하는 청소 아줌마'로 알려진 김도연(54·여)씨는 휴일을 반납하고 매주 토요일 광화문역을 청소한다. 21년간 일한 금융회사를 명예퇴직하고 3년 전부터 이곳에서 청소 일을 하는 김씨는 짬 나는 대로 판소리 등 노래공연도 한다. 김씨 외에도 두 명이 교대로 근무한다. 몸은 피곤하지만 요즘 더 행복하다. 추운 날 고생한다며 호주머니를 뒤져서 과자, 사탕 등을 건네주는 시민들의 따뜻한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김씨는 추운 날씨 탓에 시민들의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며 걱정했다.
김씨는 "시민들이 질서도 잘 지키고 휴지도 지정된 곳에 버리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일을 하기가 수월하다"며 "폭력을 쓰거나 협조가 안 되는 사람은 거의 한 사람도 없었다"고 말했다. 수고한다는 칭찬 한마디에 김씨는 그날의 피곤이 사라진다고 했다.
촛불집회 때마다 광화문역 상황실 직원들과 다 함께 저녁 도시락을 나눠 먹으면서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다짐한다고 했다. 김씨는 "촛불집회에 참석해야 하는 시민의 한 사람이지만, 청소하는 것으로 시민의 도리를 다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힘들지 않다"고 웃으며 말했다.
종로소방서 현장대응단 소방교 현재철(40)씨는 '모세의 기적'을 경험했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로 발 디딜 틈 없는 광화문광장에서 구급 대원임을 알리고 길을 비켜달라고 하면 시민들은 순식간에 양옆으로 길을 터주었다.
현씨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서로서로 비켜주세요, 아프신 분이 계신 것 같다며 얘기를 하셨다"며 "출동 나가면 들어가는 것 자체가 힘이 들어서 그렇지 막상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면 도움을 받아 이동하기가 수월하다"고 말했다. 수많은 인파가 한 공간에 몰리다 보니 공황장애를 호소하며 구출해달라 신고했던 한 여성을 구출한 적도 있다.
이번 촛불집회는 다른 집회와 다르게 질서정연하다고도 했다. 현씨는 "집회 현장에 가보면 경찰과 다투는 집회자들이 많이 있는데 이번 촛불집회엔 그런 상황을 거의 보지 못했다"며 "진심으로 참여의 촛불을 든 분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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