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지시’ 문형표 구속영장···대통령 관여 입증 키맨 되나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정현진 기자]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1호 구속자’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될 전망이다. 삼성그룹 경영승계 구도 형성에 정부가 간여한 정황이 드러나며 박근혜 대통령과 삼성그룹의 ‘뇌물죄’ 의혹이 한층 짙어졌다.
특검은 29일 보건복지부 장관 재직 당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로 하여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토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로 문형표 현 공단 이사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 출범 이래 첫 구속영장 청구 대상이다.
앞서 특검은 기금운용본부 및 복지부 담당부서, 문 전 장관 자택 등을 차례로 압수수색했다. 이어 공단·복지부 관계자, 복지부에 청와대의 합병 찬성 지시를 전한 의혹을 받는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 의결과정을 주재한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공단 기금이사)을 잇달아 불러 조사했다.
작년 5월 삼성이 합병계획을 내놓자 국내외 의결권 자문기관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분이 전무했던 삼성물산의 가치를 저평가해 총수일가는 득을 보고, 일반 주주는 물론 2대 주주 지위에 있던 국민연금(당시 지분율 11.21%)조차 큰 손해를 보게 된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복지부 산하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홍 전 본부장이 주관하는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찬성 의결하고 실제 합병승인 임시 주주총회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금융투자업계는 두 회사 합병을 이 부회장의 그룹 경영승계 핵심 포석으로 읽었다.
특검은 기금운용 정책을 총괄하는 복지부 간부, 홍 전 본부장 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문 전 장관이 사실상 합병 찬성을 종용한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 노후 보장을 위한 자금이 정부 입김에 삼성그룹 경영승계에 유리하도록 쓰인 셈이다.
특검은 전날 주요 관계자들과 엇갈리는 진술을 하는 문 전 장관을 도주·증거인멸 등 우려로 긴급체포했다. 문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에는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혐의도 적시됐다. 국회는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합병 찬성에 힘을 싣도록 박 대통령 등 청와대로부터 지시받거나, 국민연금에 지시한 적이 없다고 허위 증언한 문 전 장관을 특검에 고발했다. 문 전 장관은 특검 조사과정에서 ‘국민연금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뒤늦게 인정했다.
특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보유 지분평가액이 각각 1조2000억원 안팎으로 비등했던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주식 가치를 제일모직의 3분의 1 수준으로 깎아내려 손실을 자초했다고 보고 업무상배임 책임에도 무게를 두고 있다. 특검 관계자는 “추가 적용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특검은 법원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문 전 장관을 구속하는 대로 박 대통령이 지시했는지 여부 등 합병안 찬성 지시 배후를 규명할 방침이다. ‘청와대-복지부-국민연금’으로 이어지는 의사결정 왜곡 구조가 사실로 드러나면 이는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국내 대기업집단 가운데 가장 많은 204억원을 출연하고, 최씨 일가에 94억여원을 특혜지원해가며 박 대통령과 ‘비선실세-경영승계’ 지원을 맞교환한 ‘부정 청탁’의 유력 정황이다.
특검은 이날 오후 김재열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 사장도 불러 조사하고 있다. 김 사장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둘째 사위이자, 2018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또 김종 전 문체부 차관 주선으로 비선실세 최순실(구속기소)이 조카 장시호(구속기소)를 앞세워 동계스포츠 이권을 노리고 설립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측과 접촉한 인물이기도 하다.
앞서 검찰은 “심적 부담을 느껴 후원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김 사장 등의 진술에 막혀 삼성이 직권남용·강요의 피해자라고 일단 결론냈다. 특검은 그러나 경영승계를 위해 각종 현안이 산적한 삼성이 경제정책을 쥐락펴락하는 행정수반인 박 대통령과 뒷거래에 나섰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검 관계자는 “현재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중이지만 향후 조사과정에서 (신분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출국금지 상태인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강제수사·대면조사도 머지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검은 공식 수사개시에 앞서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승마협회장을 맡고 있는 박상진 대외담당 사장 등 삼성전자 관계자를 사전 접촉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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