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너는 Low의 Little drummer boy 얘길 하다가
드럼통 주위에 모여들어 드럼을 두들겨 댄다는
칸나 얘기를 했다
칸나가 잔뜩 피어나 노란 꽃머리로 통 통
아니 파란 양손으로 통통
드럼을 연주한다고 했던가
송찬호의 시라고 했던가
다음 날 도서관에서 찾아본 그의 시에 심긴 칸나는 그러나
드럼을 치고 있지 않았고
대신 반 잘린 드럼통 속에 심겨 있었는데
나는 순간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너의 얘기 속 연주회를 떠올렸는데
그게 잘 떠오르지 않았다
너에게 다시 얘기해 달라고 하면 너는
분명 또 다른 얘길 들려주겠지
분명 또 다른 연주가 울려 퍼질 거야
길에서 들은 노래는 길에서 돌아오면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밤에 만든 노래를 낮에 틀면 어딘가 반드시
고장이 나고 말듯이
아직 크리스마스는 멀었지만
파람팜팜팜
파람팜팜팜
하는 후렴이 울려 퍼지는 노래를 듣는다
드론음이 지속되는 가운데
하늘에 함박눈 쏟아지는
붉은 앨범 자켓 속에 심겨 하얀 입김을 뿜어내다
천천히 꽃머리를 치켜드는 칸나가 되어
■ 내가 가장 존경하는 미학자는 발터 벤야민이다. 그는 박학다식할 뿐만 아니라 섬세하며, 무엇보다 시적인 문장을 통해 오히려 적확하게 이 세계의 비의를 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터 벤야민의 문장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그 곁에 머물러야 한다. '아우라(Aura)'는 그가 속삭이는 아름다움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의 출입문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그는, 다시 말하는 셈이지만, 어떤 개념을 정확히 정의하기보다는 단지 기술한다. 예컨대 발터 벤야민은 '아우라'를 두고 '먼 산에서 건듯 불어온 바람'과 같은 것이라고 적는다. 그리고 어떤 지면에서는 단지 일회적인 것이며 바로 그곳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이라고도 들려준다. 물론 '아우라'는 기술 복제 시대 이전의 예술 작품의 특징이긴 하지만, 여전히 그것은 우리의 삶 여기저기에 스며 있다. 이 젊은 시인이 다른 어느 날도 아니고 바로 "그날" "길에서 들은 노래" 그리고 "너의 얘기 속 연주회"가 그런 것이다. "순간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그날은, 그 노래는, 그 노래가 울려 퍼지던 그 길은, 그리고 그 노래에 대한 너의 얘기는,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그 찰나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불멸'이 되어 지금도 빛난다. 이번 크리스마스가 당신에게 그랬으면 좋겠다.
채상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