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층과 층 사이 투명한 악다구니가 살고 있다 울퉁불퉁한 소리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 보면 가벼운 미소가 문을 열고 쉿, 입 가린 소리는 보이지 않는다.
층과 층 사이에는 소란스러운 한 가족이 살고 있고 한 번도 그들을 본 적이 없다. 어쩌다 위층을 찾아가면 만날 수 없는 그악스러운 가족이 살고 있을 뿐이다.
어린 조카들이 다녀가고 아랫집 남자가 몇 번 인터폰을 누른 후부터 나는 뒤꿈치를 드는 버릇이 생겼다. 모든 소리는 들려야 안전하겠지만 아래층과 위층의 사이에는 귀 없는 가족이 산다.
소파에 누워 잠이 든 사이 거실 탁자에 뿌리가 뻗어 내려가고 새싹이 돋아났다. 아파트 층과 층 사이를 뚫고 삽시간에 커다란 나무로 자라났다. 아이들과 나뭇가지에서 미끄럼 탄다.
문득 집에서 깨어 탁자를 살펴보니 탁자 사이 오래된 씨앗 하나 말라 있다. 그 씨앗 역시 빽빽한 숲이 그리워 통통거리며 흙 위로 뛰어내리고 싶다는 듯 쿵쾅거린다.
층과 층 사이 갇혀 있는 사람들 아랫집 윗집 사이에 울타리는 없고 보일러 물 돌아가는 소리에 뿌리를 꿈꾸는 탁자가 들썩거린다.
■ 밤에도 쿵쿵, 낮에도 쾅쾅, 일요일 오후에 낮잠이라도 좀 자려고 하면 들들들들 전동 드릴 소리 그리고 연이어 못 박는 소리. 뭐 이런 몰상식한 사람이 다 있나, 한마디 해야 하지 않나, 혹시 싸움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나, 첫마디는 뭐라고 하지, 인상을 쓸까 아니면 공손하게 손을 맞잡을까, 그런데 저 소리가 정말 위층에서 나는 걸까,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그래, 오늘만 참자, 오늘만. 그렇게 참고 참고 또 참다 마침내 이를 뽀드득 갈면서 생전 다녀 보지 않았던 복도를 쿵쾅거리며 올라가 보면, 놀라워라! 참 선량하다, 예의 바르다, 이 사람. 내가 다 미안할 정도로. 그런데, 그렇다면, 도대체 주야장천 나를 괴롭히던 그 "그악스러운 가족"은 어디에 살고 있는 걸까. 혹시 층과 층 사이에 나도 위층 사람도 모르게 "소란스러운 한 가족"이 킬킬거리며 숨어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차, 싶다. 얼마 전 아래층 사람이 씩씩거리며 층간소음 운운할 때 그때 의심했어야 했다.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나도 모르고 당신도 모르는, 실은 '우리'가 층과 층 사이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채상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