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베이징=김혜원 특파원] 미국의 차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무역 정책을 전담할 신설 조직 국가무역위원회(NTC)의 초대 위원장에 반중(反中) 성향의 경제학자가 내정되면서 미·중 간 통상 전쟁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NTC 수장으로 지명한 피터 나바로(67)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대표적인 대중(對中) 강경론자로,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그날(Death by China)' 저서 등을 통해 중국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미국이 중국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를 높여온 인물이다.
나바로의 '깜짝 등장'으로 중국을 향한 트럼프의 반감에 화력이 붙으면서 중국은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다. 나바로의 지명 사실이 전해진 21일(현지시간) 그가 지휘할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중국 최대 전자 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그룹의 쇼핑몰을 5년 만에 다시 짝퉁 블랙리스트로 지정한 것도 불쾌감을 더 했다는 분석이다.
주닝 중국 칭화대학교 교수는 22일 "중국의 지도층에서는 '사업가' 트럼프가 협상의 여지를 남겨둘 것으로 생각해 왔는데 이번 인선을 보고 놀란 눈치"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를 통해 분위기를 전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23일 중국에 대한 강경학자가 백악관에 입성함에 따라 중미 양국이 함께 손해 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트럼프 정부의 압력에 견딜 체력이 충분한 데다 양국 간 긴장 관계에 익숙해질 준비가 돼 있다"면서 "만약 미국이 중국의 핵심 이익에 대한 도발을 감행한다면 중국은 미국과 마지막 결전을 치르겠다는 각오"라고 경고했다.
중국의 오랜 '눈엣가시'인 나바로가 트럼프 행정부에 전격 합류하자 중국의 물밑 움직임도 빨라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먼저 행동에 나서지는 않겠지만 트럼프가 취임 후 강력한 조치를 실행한다면 중국 역시 즉각 보복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전문가인 데릭 시저스는 중국이 292대의 보잉 여객기 주문을 취소하거나 미국산 콩 수입을 차단하는 등의 조치를 바로 취할 수 있다고 봤다.
이처럼 주요 2개국(G2) 간 통상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지만 일각에서는 비즈니스맨의 성향을 버릴 수 없는 트럼프가 최대 무역 파트너인 중국시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신보 푸단대 미국연구소장은 "트럼프의 가장 큰 걱정 중 하나가 무역적자"라며 "트럼프가 중국에 관세 장벽을 낮추고 더 많은 미국 기업이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요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자칭궈 베이징대 교수는 "나바로가 트럼프의 대중국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인 것은 맞지만 트럼프 내각에 합류한 수많은 최고경영자(CEO)들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것"이라며 "그들은 경험이 많고 세계 무역과 경제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대중 강경책이 우방국의 탈미(脫美) 현상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내부의 우려도 있다. 이안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나바로는 똑똑하고 신뢰감 있는 학자"라면서도 그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폐기에 찬성론자라는 데에는 우려를 표했다. 이안 회장은 "미래 국제 정치의 패권이 중국에 있다는 인상을 심어줘서는 안 된다"면서 "필리핀과 같이 탈미를 선언하는 국가들이 더 생겨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 김혜원 특파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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