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윤 작가, 취득시험 도전스토리…ㅜㅜ 실패자님들과 '피눈물'을 나누고 싶어요
[아시아경제 김희윤 작가] 통상 수능시험을 마친 고3 학생들은 대학 원서접수와 함께 운전면허 시험을 준비한다. 당장 차를 살 것은 아니지만, 가지고 있으면 훗날 사회생활에 두고두고 도움이 될 ‘기본템’이 되기 때문. 과거 부모님 또는 이모, 삼촌들이 필기시험에서 ‘갑을병정’과 싸우고, 공포의 T자 코스에서 불합격의 고배를 무수히 마셨다던 전설이 무색하게 2011년 이후 간소화된 운전면허 시험은 그간 손쉬운 면허취득을 가능케 해 중국에서 면허 취득을 위해 원정을 불사한 응시생이 폭증할 정도였다.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한층 강화된 운전면허시험이 오늘(22일) 부터 전면 시행을 앞둔 가운데, 전국의 면허시험장엔 간소화 운전면허시험 ‘막차’를 타기 위해 몰려든 응시생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고 필자 역시 그 중 한사람으로 막차 대열에 합류해 면허 취득 전장에 나섰다. 당장 차를 살 것도 아니고, 내일부터 차를 몰아야 할 긴한 일이 없음에도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마법처럼 이끌려 응시한 시험 현장은 그야말로 치열한 전투현장이었고, 시험 응시를 위해 지방 원정길에 올랐을 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자괴감이 들었으나, 칼을 뽑아 든 이상 무 아니라 당근이라도 썰어야 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본인은 면허 취득에 실패했다. 전국의 면허시험장에서 고배를 마신 수백 명의 불합격 응시생과 이 슬픔을 나누고 싶다.
스파르타, 700
시간은 없고, 날짜는 빠듯했다. 학원은 다닐 틈이 없어 ‘홀로’ 준비에 나섰다. 필기시험은 도로교통공단 e-운전면허 사이트에서 문제은행 파일을 다운 받은 뒤 700개가 넘는 문제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상식선의 문제와 외우는 것만이 답인 문제가 혼재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제는 ‘대형승합자동차 운행 중 차내에서 승객이 춤추는 행위를 방치하였을 경우 운전자의 처벌은?’ 답은 범칙금 10만 원에 벌점 40점이었다.
때마침 휴가 마지막 날 시간이 비었던 터라 호기롭게 전북운전면허시험장으로 향했다. 교통안전교육을 이수해야 학과접수가 가능하기 때문에 9시 전에 일찍 도착했지만, 대기인원은 20여 명에 육박했고, 다행히 노련한 직원 몇 명이 신청서 작성창구에서 신속한 처리를 도와 제시간에 접수 후 교육장에 입실했다. 끝나자마자 곧장 내려와 신체검사 후 학과시험 접수를 했고, 응시장엔 모니터 수십 대 앞에서 빠른 손놀림으로 문제를 푸는 응시자들이 자리를 지켰는데 내 옆자리에 앉은 여자는 중국인이었다. 친절하게 중국어로 출제된 문제를 풀어나가던 그녀가 시험장을 나서자 직원이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라고 말했고, 그 때부터 등 뒤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외국인도 통과하는 시험인데 떨어지면 무슨 망신인가, 아. 다행히 기억나는 문제들이 많이 나와 합격할 수 있었다.
사이드 브레이크의 악몽
곧바로 기능시험을 접수했다. 직원은 간단한 차량 조작법과 장내 직선 주행에 대해 설명하면서 “기능은 99%의 합격률을 자랑하는 시험이니 긴장하지 말고 정확하게 작동하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호기롭게 장내로 들어가 음성안내에 따라 기어변환, 전조등, 와이퍼 등을 작동하고 이제 주행만 하면 되는데 천천히 악셀을 밟으려던 순간 방송이 흘러나온다. “사이드 브레이크 미작동, 실격입니다.” 눈앞이 캄캄했다. 사이드 브레이크가 뭐지? 아니, 일단 다 합격하고 장내를 빠져나가는데, 혼자 악셀 한 번 못 밟아보고 장내를 걸어 나오니 다들 의아하게 쳐다보는 듯 했다. 아빠차로 조작법을 익혔던 터라 풋브레이크만 작동한 것이 패인이었다. 덕분에 사이드 브레이크는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게 됐으나, 일단은 쓸쓸히 면허시험장을 나서야 했다.
시험장 찾아 삼만리
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한 터라 주말에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시험장을 알아보는데, 세상에나. 전국의 거의 모든 시험장이 예약접수 불가 상태였다. 스크롤을 내려보니 문경에 자리가 있다. 경북 문경, 영남 선비들이 과거시험 치러 꼭 지나야 했다던 문경새재가 있는 그곳, 면허 따러 지방 원정까지 가야 하나 정신이 아찔해 오는데,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싶어 예약을 진행하려니 갑자기 그 자리마저 없어져 버렸다. 급한 마음에 도로교통공단에 문의전화를 넣으니 상담원 왈 방금 접수가 완료됐다며, 자리가 있는 평일에 응시하라고 친절히 안내한다. 꾸역꾸역 빈자리를 찾아 의정부에 한 자리를 간신히 접수하고, 이틀 뒤 반차를 내 아침 일찍 의정부 시험장으로 향했다.
그날은 올겨울 가장 추위가 심한 날이었고, 바람이 어찌나 매섭던지 시험장에 걸어 들어가는데 두 뺨에 눈물 콧물이 흘러내렸다. 오늘도 망하면 면허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다는 심정으로 기능시험을 접수하는데 직원의 표정이 거의 측은지심 그 자체였다. 다른 거 다 잘 작동하고, 박력 있게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리고 악셀을 밟았다.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이 소리 한 번 듣자고 여기까지 왔나, 기뻐할 틈도 없이 도로주행 접수를 위해 시험장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만석.
시험이 개정되는 22일까지 빈자리가 없단다. 직원은 접수가 가능한 지방의 시험장 몇 곳을 읊으며 친절히 ‘원정’시험을 안내했고, 필자의 표정은 다시금 어두워졌다. 아니, 면허시험을 보는 내내 표정이 좋았던 날이 있긴 했나. 주말 지나고 월요일에 전북 시험장에 빈자리가 있었다. 같은 날 문경 시험장도 자리가 있었지만, 쓰라린 스틸의 추억은 발길을 전북으로 향하게 했다. 친구들은 콜드플레이 콘서트 예매로 광클전선에 나서는데, 나는 면허시험장 예약을 위해 클릭을 반복하려니 속이 쓰렸다. 심지어 콜드플레이는 추가 공연도 한다. 면허시험은 짤 없이 22일부터 개정된다. 씁쓸한 마음으로 시험장을 또 나섰다.
주차가 망조
이번엔 물러설 곳이 없었다. 공터에서 아버지의 지도하에 주행의 기초를 익혔지만 손은 달달달 떨리기만 했다. 결연한 의지를 다진 뒤 전북시험장의 모의주행 영상을 반복해서 보는 것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시전했다. 월차를 내고 다시 찾은 전주. 시험장엔 지난번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시험장에 비치된 모의주행 기계는 오락실에서 흔히 보던 자동차게임의 그것과 비슷해 인기가 많았고, 내 옆엔 폐차장에 방금 갖고 나왔다고 해도 믿을법한 상태가 심각한 구형 소나타를 타고 온 파키스탄 청년이 함께 대기했다. 저 차가 굴러가냐 물으니 청년은 “형님이 이 차로 내 운전을 가르쳐줬다”고 웃으며 답했다. 하긴, 저 정도 차라면 정말 부담 없이 운전연습 주차연습 마음껏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장의 코스는 10개에 육박했으나, 지금은 그중 4개만 운영 중 이라며 코스를 설명하는 직원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누가 봐도 쉬워 보이는 코스가 하나 있었고, 나머지 세 코스는 비슷한 구성이었다. 차량을 배정받고 대기하는데 1번이란다. 다른 이의 운전을 한 번 지켜보고 하면 좋았으련만, 운은 이번에도 없었다.
차량의 외관을 살피고, 의자와 후사경을 조정한 뒤 안전벨트 메고 시동 켜고 도로로 나가자 모든 것이 수월했다. 이따금 차선변경을 하고, 어린이 보호구역에선 속도를 줄이며, 신호를 준수하는 일은 도로주행 영상을 여러 차례 돌려본 덕에 쉽게 쉽게 진행됐다. 시험장까지 무사 도착해 평행주차만 남았다. 힐끗 넘겨본 감독관의 태블릿 PC에 뜬 점수는 90점. 주차 망해도 3점 감점이니 합격은 떼놓은 당상이다 싶어 기분이 한껏 업된 상태. 그런데 후진으로 차를 주차구역에 넣는데 각도가 영 이상했다. 빼고 넣고 반복하는 사이 선도 몇 번 넘고, 턱도 두 번 넘었다. 괜히 무리하지 말고 포기할까 싶으면 감독관이 “계속 진행하세요”라며 독려하니 끝을 봐야겠다 싶어 기어이 주차를 마쳤다.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진 감독관, “왜 주행 잘하셔놓고 마지막에 주차를~ 으응? 여기서만 감점이 얼마에요, 네?” 태블릿 PC의 90점은 온데간데없고 68점이라는 충격적인 숫자만 남아있었다. 이건 꿈일 거야, 현실이 아니야 부정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시동을 끄고 격분한 필자는 운전대를 내리쳤고, 감독관은 그런 내가 불쌍했던지 3일 뒤에 다시 오라며 어깨를 두드렸다. 도로주행은 불합격 후 3일이 지나야 재응시가 가능하다. 그날은 19일이었고, 내가 재응시가 가능한 날은 22일.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렇다. 나는 면허시험에 떨어졌다. 그리고 도로주행은 개정된 시험으로 치를 예정이다.
2011년 간소화 이후 ‘물면허’라 불렸던 운전면허시험은 22일 개정을 통해 ‘불면허’로 변신을 앞두고 있다. 학과시험 문제은행 문항 수는 종전의 730문항에서 1,000문항으로 늘어나고 장내 기능시험은 경사로와 직각주차(T자 코스) 등 평가항목이 2개에서 7개로 바뀐다. 그 유명한 오르막길 코스과 T자 코스 부활 소식에 시험장에 인파가 몰렸던 거다. 도로주행은 평가항목이 87개에서 57개로 줄어든 대신 감점 폭이 5점부터 시작해 7점, 10점으로 바뀐다. 어려워진 시험에 불법교습과 학원이 기승을 부릴 예정이라 경찰에서는 특별단속에 나선다고 했다. 주행시험 접수를 위해 다시 찾은 도로교통공단 사이트의 인원표기는 22일부터 널널했다. 무리해서 올라탄 막차는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좌절을 안겼지만 심적 육적 피로도는 극심했고, 무엇보다 차량구입 계획이 전혀 없는데 왜 이렇게 무리를 했나 다시 한번 자괴감이 뼈에 사무쳤으나, 해보지 않고는 스스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없기에 면허시험 실패는 기꺼운 고난의 여정이었다. 바람 내음 맡으며 차로 어디론가 누비게 될 순간마다 나는 시험의 시련을 떠올려볼 것이다.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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