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수출입은행 신시장개척단, 신흥국 사업발굴 숨은 지원군 역할 톡톡
한국의 금융에서는 왜 아직 세계 1등이 없을까. 아시아경제는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국내 금융사들이 남다른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분야를 밀착취재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은행들은 고만고만한 상품과 시장환경에서도 '비장의 무기'를 하나씩 갖고 있었다. 이같은 분야가 은행의 새로운 성장엔진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국내외 시장에서 활발히 미래 먹거리를 찾고 있는 국내 은행들의 모습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지난 10월 미국 뉴욕 힐튼 미드타운 호텔. 수출입은행이 2억8000만달러의 금융지원을 했던 SK건설의 '터키 이스탄불 유라시아 해저터널' 사업의 시상식이 열렸다. 미국 건설ㆍ엔지니어링 전문지 ENR은 이 사업을 '세계최고의 터널 프로젝트'로 선정했다. 내년 4월 개통하는 유라시아 해저터널 사업은 총 사업비 12억4500만달러 규모의 민자 인프라 사업. 바다 밑으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3.34km의 터널을 뚫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이날 상을 받은 곳은 SK건설이었지만 고비마다 금융밸류체인을 짜준 '숨어있는 지원군'은 수출입은행이었다.
"공식자문사는 유니크레딧(UniCredit)이었지만 비공식적으로 금융자문을 해줬던 수은의 활약이 훨씬 컸다." 당시 SK건설 딜에 참여했던 관계자의 말이다. 수은은 유로존 재정 위기로 프랑스계 은행들이 발을 빼자 국제기구인 유럽투자은행(EBI)과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자금이 풍부했던 미즈호, 스미모토 등 일본계은행을 SK건설에 연결해줬다. 터키 정부와 수차례 협상 끝에 최소운영수입보장(MRG), 사업종결시 채무인수확약과 같은 유리한 조건도 끌어냈다. 협상에 나섰던 수은 관계자는 "신흥국 민자 인프라사업의 경우 공고에 빈틈도 많았고 그만큼 해석의 여지도 많았다"면서 "우리기업이 유리한 쪽으로 금융모델을 만드는 게 관건이었다"고 말했다.
'금융의 종합상사화(化), 밸류체인화' 수출입은행 신시장개척단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전통적인 은행은 기업이 문을 두드릴 때 부족한 돈을 빌려준다. 하지만 최근의 해외사업은 금융이 먼저 나서 사업기회를 발굴하고 기업에 이를 소개해주는 형태로 변하고 있다. 잠재적인 대주단 접촉부터, 사업타당성 검토, 금융 조달계획 수립, 해당국정부와의 협상 등 금융 전 영역의 밸류체인까지 구성해주는 것이다. 이른바 '선금융 ㆍ 후수주'다.
김영기 수은 신시장개척단장은 "EDCF 수탁기관으로서 수은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발빠르게 신흥국의 사업발굴기회를 포착하고 금융밸류체인을 짜 신시장에서 우리기업들의 사업발굴기회를 높이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특히 수은은 공적수출기구(ECA)로서 갖고 있는 해외네트워크(23개국 25개사무소. 4개국 4개현지법인)의 유ㆍ무형 자원과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수탁기관으로서 보유하고 있는 정보를 십분 발휘할 수 있다. 외자유치가 절실한 신흥국과의 네트워크가 두텁다는 게 강점이다. 하두철 수은 팀장은 "수은은 신흥국의 국가개발계획이나 민간 디벨로퍼, 해외공기업 등 여러 주체들과 네트워크를 맺고 있다"면서 "신흥국의 개발계획을 사업초기단계부터 발굴해 우리기업에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은이 주목하는 국가는 베트남, 미얀마, 필리핀, 우즈벡, 인도 같은 곳이다. 성장을 하는 곳이라 대형 인프라 수요가 아무래도 많다. 개도국 인프라 투자의 특징은 ECA나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점. 바로 여기에서 여러 국제기구와 공동 컨소시엄이나 협조융자를 원활히 할 수 있는 수은의 장점이 발휘된다. 법 체계가 미비한 해당국의 입찰제안서를 뜯어보고 유리한 조건으로 금융협상을 따오는 것도 중요하다. 수은은 해당국 정부와 우리 기업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한다.
해외시장에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샌드위치' 상태의 우리 기업들에겐 이같은 금융지원이 '가뭄의 단비'인 셈이다. 김영기 단장은 "선제적으로 신흥국의 사업기회를 포착하고, 원스톱으로 금융 밸류체인을 만들어 우리기업이 경쟁력을 갖고 해외 신시장을 개척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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