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단체 "집필자 수준 드러난 사례" 지적
서울시내 모든 중학교 "내년 3월 사용거부"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의 내용에서 다수의 오류와 왜곡이 발견돼 학교 현장에서 쓰기에 '함량미달'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학계와 교사 단체들의 강도 높은 비판 속에 서울 지역 중학교들은 내년 3월 새 역사교과서 사용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교과서 검토본을 긴급 분석한 역사교육연대회의는 지난달 30일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을 사흘 동안 검토한 결과 사실 관계가 틀린 것을 비롯해 학계의 논란 부분까지 상당한 오류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작업에는 민족문제연구소와 전국역사교사모임, 한국역사연구회 등 7개 진보 역사단체가 참여했다.
일례로 중등 역사1 검토본에는 함무라비 법전이 '세계 최초의 법전'으로 돼 있지만 강성호 한국서양사학회장(순천대 교수)은 "400년 앞선 법전이 발견돼 이미 틀린 사실로 확인됐고, 검인정 교과서에서조차 바로잡았던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친일파에 대해서는 '친일 인사나 단체', '친일 세력', '친일 반민족 행위자'라는 용어가 혼재됐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자서전이라고 설명한 부분에 대해 김태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동양평화론은 미완성 논책이며 자서전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은 "현대사 부문에서 국민보도연맹 사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등 국가 폭력사건을 전혀 서술하지 않았다"며 "국가 차원의 과거사 진상규명 활동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고 명예가 회복된 사건인데도 일체 서술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비난했다.
이들 교수들은 또 "지적된 오류는 이번 교과서 집필자의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며 "맥락에 맞춰 교과서의 잘못된 부분을 다시 바로잡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꼬집었다.
일선 학교들은 국정 역사교과서를 쓰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기 시작했다.
내년 1학년에 역사과목을 편성한 서울시내 19개 중학교 교장들은 이날 서울시교육청에 모여 국정 역사교과서를 새 학기에 사용하지 않는 방안을 논의하고, 1학년에 편성된 역사 과목을 2학년이나 3학년에 재편성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에 따라 서울의 384개 모든 중학교 가운데 내년에 국정 역사교과서를 사용하는 곳은 한 곳도 없게 된다.
반면 전국 사립학교법인 협의체인 한국사학법인연합회는 내년 교육에 지장이 없도록 예정된 일정대로 국정 역사교과서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연합회는 "초중등교육법에 근거해 교육부 고시로 발행되는 국정교과서는 시대에 따라 자유민주주의와 국가 정통성이 좌우되지 않도록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철저하게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