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연말을 앞두고 '최순실 게이트'와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 등으로 소비심리가 꽁꽁 얼고 있다. 소비 위축 요소로 지적됐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은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 두 달 만에 타격이 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소비자들의 지갑이 좀처럼 열릴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소비자들이 향후 경기 전망을 더욱 어둡게 내다보면서 내구재·의류 구입은 물론 외식·여행 등에서 소비를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올해 말과 내년 초에 걸쳐 '소비절벽'이 현실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청탁금지법 시행에도 카드사용 증가 '반전'=청탁금지법은 시행 이전부터 일반음식점 등을 중심으로 소비가 크게 줄 것으로 예상됐던 경제 요소였다. 시행 이전부터 공무원과 언론인 등 청탁금지법 대상자들은 약속을 잡지 않았고 시행 당일 고급 음식점은 자리가 텅텅 비었다.
하지만 법이 시행된 지 두 달이 된 지금 소비 위축 우려는 크게 사라졌다. 여신금융연구소가 발표한 '2016년 10월 카드승인실적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전체 일반음식점의 카드승인액은 8조1917억원으로 전년동월대비 7.9% 증가했다. 법인카드 사용은 0.2% 줄었지만 개인카드 승인금액이 9.7% 늘어나면서 오히려 크게 증가했다.
청탁금지법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됐던 골프장의 경우 법인카드 사용은 전년동월대비 7.9% 감소한 반면 개인카드 사용이 7.0% 늘면서 전체 카드 승인금액은 1.2% 증가했다.
다만 유흥주점의 지난달 카드 승인금액은 개인카드, 법인카드 부문에서 각각 2.3%, 15.1% 감소하면서 전체카드 승인금액은 전년동월대비 5.5% 줄었다.
정채중 여신금융연구소 연구원은 "전체카드 승인금액 중 법인카드 비중이 17%에 불과하고 청탁금지법에 영향을 받는 업종에서 법인카드 승인금액 축소가 국내 소비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이다"라고 분석했다.
정부의 소비진작책인 '코리아세일페스타'의 효과도 나타나면서 지난달 전체카드 승인금액은 62조4900억원으로 전년동월대비 12.4% 증가했다. 청탁금지법의 소비 위축 타격은 예상한 것만큼 크지 않았다.
◇최순실·트럼프 쇼크에 소비자심리 '꽁꽁'=청탁금지법이라는 고비는 넘겼지만 '최순실 게이트'라는 대형 악재가 터지면서 우리 경제는 불확실성이 급격히 확대됐다. 또 예상과 달리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대외 불확실성까지 높아진 상태다.
한국은행의 '11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5.8로 전월에 비해 6.1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월(94.2)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소비자심리지수가 7년 7개월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CCSI는 100을 기준으로 이보다 크면 낙관적인 전망이 많고, 그 이하면 비관적인 전망이 많다는 뜻이다.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한 지수는 경기 관련 CSI다. 향후경기판단CSI는 64로 전월에 비해 16포인트 급락했다. 2009년 3월(64) 이후 최저 수준이다. 앞으로 6개월 뒤 경기상황이 현재보다 악화될 것으로 보는 소비자가 큰 폭으로 늘었다는 의미다. 현재경기판단 CSI도 10월 72에서 11월 60으로 크게 떨어졌고, 취업기회전망CSI도 전월에 비해 11포인트 떨어진 68을 기록해 취업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말 소비절벽 올까…금리 오르면 소비 제약=연일 터지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정책,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미 연준)의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대내외 불확실성이 한층 높아지면서 가계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흔들리고 있다. 이에 올해 말과 내년 초에 소비절벽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실제 한은 조사에서 소비지출전망CSI는 10월 107에서 11월 106으로 1포인트 하락했다. 소비지출전망CSI에서 품목별로 살펴보면 내구재(95→91)와 의류비(102→98), 외식비(91→88), 여행비(91→88) 등 전반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내구재와 옷에 대한 지출은 물론 외식·여행 등에서도 소비지출을 최대한 줄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뿐만 아니라 급등하는 시장금리도 소비를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시장에서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미국 금리 인상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시장금리가 오르고 있다. 시장금리가 오르면 대출금리가 올라 가계에 이자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가계를 중심으로 소비 심리를 악화시키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가뜩이나 소비가 살아나질 않아서 정부에서 각종 정책을 쓰고 있는데 대형 악재가 연달아 터지면서 심리가 순식간에 얼어버렸다"며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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