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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마디] 본질은 '박정희-이명박-박근혜 게이트'

시계아이콘01분 48초 소요

 '최순실 게이트'는 이제 '박근혜 게이트'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에 의한 국정 농단의 방관자나 공범이 아니라 사실상 주범이라는 것이 어제(20일) 발표된 최순실에 대한 검찰 공소장의 요지다. '박근혜 게이트'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든 이 명명, 아니 개명(改名)은 사실 너무 늦었다. 처음부터 진상은 '박근혜 게이트'였다. 예컨대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 콘텐츠를 만들고 배급했다는 이유로 민간 기업의 부회장을 쫓아내라고, 경제정책의 콘트롤 타워인 경제수석을 시켜 집요하게 다그친 것과 같은 행태가 보여주듯 황당하다 못해 실소가 나는 이 사태에 대한 '포괄적 책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었고, 그래서 '박근혜 게이트'였어야 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분명히 박근혜 게이트로 우리는 불러야 한다. 그러나 그걸로 충분한가. 아니다. 그걸로는 결코 충분치 않다. 이 게이트의 정확한 이름은 무엇이 돼야 하는가. 그것은 '박정희-박근혜 게이트'라야 맞다. 더 정확하게는 '박정희-이명박-박근혜 게이트'라고 해야 마땅하다.

 박근혜는 통치술(만약 그걸 '통치술'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을, 누구로부터 배웠을까. 그는 아버지 박정희의 충실한 계승자였다. 이미 40년 전 청와대 공주 시절의 '실습'이 있었듯 박근혜의 4년간 통치는 그때 본 대로, 배운 대로, 해 본 대로 했던 것일 뿐이다. 딸이 그의 아버지 얼굴에 먹칠을 했다고 한다면 그건 아버지를 배신해서가 아니라 아버지를 충실하게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토요일마다 광화문 광장에 나온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그러나 시민들의 촛불과 함성은 단지 그것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시민들은 '새로운 나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외쳤다. 그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기 위해 우리가 넘어야 할 것들, 거기에 질기디 질긴 박정희 신화가 있다.


 박정희의 시대는 그가 믿었던 수족에게 비참한 죽음을 당하면서 무덤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거기에 덫이 있었다. 독재자를 부산과 마산에서부터 타오른 시민들의 힘으로 끌어내리지 못함으로써 박정희는 그 죽음의 순간에 새로운 탄생을 이뤄내고 있었다.
 전두환의 권력 탈취로 18년 독재와 유신의 역사는 청산되지 못한 채 월간지의 폭로에 머물고 말았다. '박정희'를 화려하게 부활시킨 것이 사실상 첫 민간정부였던 김영삼 정부였다는 것은 기막힌 아이러니다. IMF를 부른 김영삼 정부의 경제 실정(失政)이 박정희를 다시 불러왔다. 그는 환생했다. 단지 되살아난 것이 아니라 빛나는 '신화'가 돼 환생했다.

 그 10년 뒤, 박정희의 후원으로 승승장구했던 이명박이 대통령이 됐던 데에도 박정희 신화의 후광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또 다른 박정희 시대, 박정희 2기 정권에 다름 아니었다. 그가 최고권력에 있으면서 파렴치와 천박한 언행들과 함께 보여준 것은 4대강 공사 따위의 탕진으로 박정희 시대를 재연하려던 것이었다. 그것은 박정희 신화에 적잖은 균열을 냈다. 그러나 '박정희 교(敎)'에는 아직 적통이 남아 있었다. 이명박이라는 대리인 정도가 아닌 박정희 가문의 명실상부한 계승자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박근혜는 대통령이 됐고, 대통령이 돼서 '아버지의 나라'의 모든 것을 복원하려 했다.


 우리는 이제 박근혜에게서 박정희의 얼굴을 본다. 한국 현대사와 박정희 시대에 대한 심층 보고서로 평가받는 미국 하원의 프레이저 보고서에서 '박정희, 선거결과를 바꾸려고 경제를 조작하다''박정희가 직접 수금에 나서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그 딸 박근혜를 본다. 굴욕적인 일본군 위안부 협상을 밀어부치는 박근혜에게서 청와대의 저녁시간에 홀로 있을 때 일본 군복을 입고 일본 군가를 들으며 옛 시절의 추억에 젖었다는 다까기 마사오를 본다. 딸에게서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에게서 딸을 본다.


 광화문 광장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자 한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에게만 허용돼 온 '탄신(誕辰)'이란 말로 떠받드는 이들이 박정희 동상을 세우려는 그 광화문 광장에서 우리는 지금 박근혜 너머 '박정희'와 싸우고 있다. '박정희들'과 싸우고 있다.
 이명재 편집위원 pr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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