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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밤 1시의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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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밤 1시의 회의 오준 주(駐)유엔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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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가 조금 지나 전화가 울렸다. 우리 대표부의 군축 팀장인데, 미국대표부에서 북핵 관련 협상 진전사항을 밤 1시에 만나서 설명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 팀은 3명 모두 여성이고, 미국의 담당 팀은 전원이 남성이다. 미국이 우리보다 여성 외교관 비율이 높으니까 이것은 우연한 일이지만, 한밤중에 회의를 하자는 게 너무 우리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것 같아서, 아침에 만나도 되지 않겠냐고 했다. 팀장은 밤낮이 반대인 서울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는데, 그것도 있겠지만 미측은 밤에도 협의가 가능하다는데 우리가 (여성이라서?) 소극적으로 보이는 게 싫은 것 같아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 여성의 사회참여는 꾸준히 확대돼 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1960년 40%에서 2015년 59%로 크게 상승했다. 우리나라도 여성 고용률이 계속 높아지고, 대학 진학률의 경우 2009년 여성이 남성을 추월해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여성 공무원의 비율도 커졌다. 필자가 외교부에 입부한 70년대 말에는 여성 외교관이 거의 없었는데 최근에는 매년 외교관시험 합격자 중 60~70%가 여성이다. 올해 남성 비율이 30% 아래로 내려가면서 최초로 양성평등 채용목표제가 남성에게 적용됐다.

이처럼 여성의 사회참여는 급속히 확대되고 있지만 일하는 여성을 위한 사회제도, 규정, 예산상의 뒷받침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여성이 직장과 가정에서 동시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우리 대표부도 여성 직원의 수유 등을 가능케 하는 여성 전용 휴게실과 같은 물리적 환경 개선, 육아휴가 제도의 최대한 활용 등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쉬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더 어려운 부분은 인사나 평가에 반영되는 경쟁적이고 성과지향적인 업무문화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류 역사에서 오랫동안 남성은 주로 밖에서 활동하고 여성은 가정 내부를 돌보는 업무의 분담이 이뤄졌다. 물론 당초에는 출산이라는 생리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아이를 적게 낳고 사회가 교육의 상당부분을 책임지게 된 후에도 이러한 ‘전업직장인’과 ‘전업주부’의 공식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사회와 직장에서는 남성 위주의 업무문화가 발전해왔다. 즉, 부부 중 한쪽이 가정을 맡아 돌보기 때문에 사회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다른 한쪽은 중요하거나 바쁜 일이 있으면 24시간 언제든지 나와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전제가 당연시된 것이다. 처음부터 모든 가사를 남녀가 함께 분담하였다면, 업무문화가 지금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정말 급하고 중차대한 상황이 아니면 시간외 근무를 요구하기 어려웠을 것이며, ‘습관성 야근’과 같은 표현도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남성중심의 문화에서는 아무리 많은 여성이 직업을 갖게 돼도 ‘전업직장인’(즉, 남편이 가사 전담)이 되지 않는 한 고충이 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육아 문제로 가끔 아기를 사무실에 데려온 여성 외교관에게 본인이 희망할 경우 업무량이 적은 부서로 이동시켜 주겠다고 했으나 거절한 적이 있다. 오랫동안 유지돼 온 경쟁적 문화에서 성공하겠다는 동기는 여성 직원들도 강하기 때문에 문화 자체가 바뀌기 전에는 개별 해결책이 나오기 어려운 것이다.


남녀평등과 여성의 사회참여가 정착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문화는 변할 수밖에 없다. 부부 중 한쪽만이 사회에 참여하는 시대에 비해서 근로인력이 두 배가 되었으니까 이론적으로는 근로시간이 반으로 줄어도 된다. 즉, 누구나 시간을 직장과 가정에 반반씩 나눠도 사회 전체의 근로시간 총량은 그대로일 것이다. 현실에서 일인당 근로시간을 반으로 줄이지는 않더라도 모든 근로자가 직장과 가사를 겸무한다는 전제의 새로운 근로 문화의 정착이 필요하다.


그러한 근본적인 변화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우선은 양성평등의 실현을 위해 정부와 사회가 노력을 계속하는 가운데, 사회 전체의 성과를 우선시할 필요성과 사회 구성원의 복지를 중시하는 고려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본다.


오준 주 유엔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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