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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점 이름을 '십상스시' '정윤횟집'으로?…조응천의 '2년 드라마'

시계아이콘읽는 시간2분 50초

돌아온 '딥스로트'- 靑 문건유출 뒤 역린으로 해임된 '親박지만'…금배지로 부활해, '최순실정국'의 무서운 입으로


요리점 이름을 '십상스시' '정윤횟집'으로?…조응천의 '2년 드라마' 촉망받는 검사로 시작해 청와대 비서관을 거쳐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인간 조응천의 이력만 놓고 본다면 '꽃길'만 걸은 엘리트를 떠올리기 쉽지만, 최근 불거진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사태와 맞물린 그의 4년은 천국과 지옥을 오간 한 편의 극적 서사였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청와대의 비밀을 '삭제'는 했지만 '포맷'은 안했다고 천연히 말하던 그의 여의도 입성에 청와대는 여전히 경계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스스로 자처했던 'Watchdog'의 역할을 더 강력하게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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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작가]2014년 11월 28일, 세상에 처음 공개된 청와대 감찰보고서로 촉발된 이른바 ‘청와대 문건유출’ 파동으로 해임됐을 때까지만 해도 조응천 당시 비서관을 향한 세상의 비난은 매섭고 따가웠다. 승승장구만 하던 ‘오빠’의 시련은 이내 무죄를 딛고 더불어민주당 입당 후 국회의원 당선의 기쁨으로 뒤집혔고, ‘최순실 국정개입’ 사태에서 결정적 증거가 된 태블릿PC의 존재와 사실상 이를 인정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대통령기록물 반출’로 자신에게 쏟아졌던 공격의 화살을 고스란히 청와대로 돌려보낼 절호의 기회가 됐다.

검찰과 청와대를 거쳐 국회에서 절치부심하고 있는 그의 지난 3년의 이력만 놓고 본다면, 집 나갔던 오빠가 매서운 칼을 뽑아 들고 다시 돌아온 형국. 공백이 무색하게 그의 행보는 과감하고 파장이 크다. 지난 2월, 더불어민주당 입당 당시 “청와대 근무 당시 취득한 청와대 핵심정보를 들고 야당으로 간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서류 같은 것은 들고 나온 게 아무것도 없고, 다만 머릿속에는 남아있다”고 답한 그였다. 포맷되지 않고 삭제만 한 파일들이 하나둘씩 복구되어 그의 입을 통해 나오는 순간, 문장 하나하나가 그 즉시 청와대를 향한 화살이 되고 있다. 가장 단단했던 방패였던 그가 지금 가장 매서운 창이 된 경위는 무엇이었을까?


요리점 이름을 '십상스시' '정윤횟집'으로?…조응천의 '2년 드라마'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은 과거 검찰조사의 인연으로 조응천 의원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유출 파동 또한 박 회장과 정윤회 간의 알력다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이어졌고, 청와대가 조 의원을 당시 비서관직에서 해임하면서 '비선실세' 논란이 더욱 불거졌다. 총선 전 조응천 의원의 더불어민주당 입당 선언에 대해 그는 "오죽하면 그랬겠나, 인간적으로 이해한다"고 밝혀 두 사람의 각별한 관계를 시사한 바 있다. 사진 = '청와대 문건유출'논란 당시 검찰에 출석하는 박지만 EG회장/아시아경제 DB

화려한 경력, 그리고 박지만


조응천 의원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 1986년 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서울지검 남부지청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대구지검, 법무부와 대통령 민정수석비서실 파견을 거쳐 수원지검 공안부장을 끝으로 검찰을 나와 김앤장에서 변호사로 잠시 몸담았다 2006년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으로 발탁됐고, 2008년엔 국가정보원장 특별보좌관을 맡는 등 각 정권에서 요직에 두루 중용되는 엘리트 법조인으로 활약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은 2011년 새누리당 대선 캠프에 합류, 상대진영의 네거티브 공격 대응을 담당하면서 시작됐고, 당선 후엔 인수위를 거쳐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임명되며 근거리 비서진으로 간극이 좁혀졌는데, 청와대 근무 당시 그는 원칙적 업무 스타일로 ‘비선’라인과 보이지 않는 잡음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잡음은 결국 ‘정윤회’라는 존재를 수면 위로 급부상시킨 ‘문건유출’ 논란으로 이어졌고, 조 전 비서관은 2014년 4월 14일 해임됐다.


김대중 - 노무현 - 이명박 - 박근혜 정부를 아우르는 청와대와 행정부처 근무 이력은 곧 그의 업무 능력에 대한 반증이었고, 거기다 당시 조 전 비서관 뒤에는 대통령의 남동생 박지만 씨가 있었다. 1994년 마약류 투약 혐의로 세 번째로 구속된 박지만 씨의 담당 검사로 첫 인연을 맺은 그는 박 씨가 상습투약혐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가벼운 치료감호 청구를 법원에 요청하며 친분을 쌓게 됐는데, 문건유출논란 때 그는 박 씨에게 정윤회 동향보고서를 포함한 6건의 문건을 건넨 사실을 밝혔고, 이를 ‘정보제공’ 차원이라 설명했으나 오히려 두 사람의 공고한 관계를 보여준 단면적 사건으로 풀이됐다. 베일에 싸인 정윤회라는 존재와 대통령 동생 박지만 간의 권력 암투는 그의 해임과 검찰수사로 이어지며 정윤회의 판정승으로 일단락됐다.


요리점 이름을 '십상스시' '정윤횟집'으로?…조응천의 '2년 드라마'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전 행정관이 작성한 'VIP측근 동향 문건'의 주인공인 정윤회는 문건유출 당시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의혹을 부인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최근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인 최순실의 전 남편으로 사실상 당시 그가 국정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정황 또한 최근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사진 = 청와대 문건유출 논란 당시 고소인 자격으로 검찰에 출석하는 정윤회, 뒷편엔 최근 최순실의 변호를 담당해 주목받은 이경재 변호사/아시아경제 DB


정윤횟집, 십상스시


갑작스러운 공직생활 해임과 기소 후 이어진 검찰 조사와 더불어 언론의 뜨거운 관심에 격분한 그는 해임 후 마포구에 개업한 자신의 해물요리 전문점 이름을 ‘정윤횟집’ 또는 ‘십상스시’로 지으려 했을 정도로 청와대에 대한 분노가 곪아있었다. 기소된 내용에 대해서는 1, 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여전히 무고에 대한 억울함은 인이 박일 정도. 이때, 가게에 단골로 찾아온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의해 마지막 ‘인재’로 영입된 그는 20대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전격 야당에 입당하는 파격 행보를 보였다.


불출마 선언을 했던 더불어민주당 최재성 의원의 지지를 받아 연고도 없던 경기도 남양주시 갑 선거구에 출마한 조응천 당시 후보는 지역 토박이였던 새누리당 심장수 후보를 상대로 249표 차로 신승을 거두고 여의도에 첫발을 내디뎠는데, 과거 그와 박지만 회장의 관계를 주시하던 청와대의 감찰자료에 따르면 그가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을 흔들기 위해 문건을 작성 후 박 회장에게 전달한 당시 배경에는 사실상 3인방에 대항해 박 회장의 비선 역할을 함과 동시에 향후 정계 진출을 노렸던 것이 아니냐는 내용이 흘러나왔으나 정확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해 추측에 그친 바 있다. 추측의 과정은 빗나갔으나 결과는 어쨌든 이뤄진 셈.


위기를 기회의 기화로 삼은 탁월한 선택은 전략적 입장에서 봤을 땐 극적 묘수였으나, 횟집 운영 당시 다양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심정과 상황에 대해 담담하게 토로하던 1년여의 행보는 가장(假裝)이라 하기엔 현실이었고, 진정(眞情)이라 하기엔 의뭉스러운 면이 많았다. 청와대 비서관 발탁 후 그는 행정관 비리 사례를 다수 적발하며 원칙적인 업무 스타일을 고수했으나, 야인 신분으로 돌아와선 SNS를 통해 중년의 뽀통령(뽀로로와 닮은 외모로 붙여진 별명)으로 맹활약을 펼치는가 하면 의원 당선 후에도 격 없는 언어 구사와 함께 빼어난 ‘드립력’을 선보여 화제가 되고 있는 그는 2년 만에 청와대에서 자영업자로, 자영업자에서 국회로 소속을 옮긴 추락과 비상의 서사를 통해 초선 의원임에도 청와대에 가장 위협적인 저격수로 떠올랐다.


요리점 이름을 '십상스시' '정윤횟집'으로?…조응천의 '2년 드라마' 국정농단의 핵심 인물들이자, 청와대와 최순실을 이어준 매개 역할을 했던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은 최근 정호성 비서관의 구속을 필두로 나란히 검찰 출석을 앞두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재만 총무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 정호성 부속비서관. 사진 = 연합뉴스


역린(逆鱗)서 역풍(逆風)으로, 딥스로트(Deep Throat, 권력 내부고발자)의 역전


대한민국 권력서열에 대한 2년 전 발언으로 다시금 회자되고 있는 박관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은 과거 VIP 측근(정윤회) 동향 보고서 (이하 문건) 작성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 보고 후 조응천 비서관으로부터 ‘역린을 건드린 것 같다’는 대화를 나눈 사실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최근 밝혔다. 당시 ‘역린’은 문고리 3인방(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비서관) 너머의 정윤회, 어쩌면 그 너머의 최순실이었을 것.


박 전 행정관은 주변이 다칠 것 같아 함구하겠다고 했고, 조 의원 역시 ‘딜리트’ 했다고 하는 구중심처 안에서 벌어졌을 의미심장한 시간들은 최근 JTBC가 공개한 최순실의 태블릿PC를 통해 ‘국정농단’ 사태로 번져 검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두 사람이 적으로 돌렸던 3인방 중 정호성 전 비서관은 구속, 나머지 이재만, 안봉근 전 비서관에 대해서도 검찰의 칼날이 향해가고 있는 가운데 조 의원은 지난 1일 국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민조사위’ 회의에서 “당·정·청 곳곳에 ‘최순실 라인’과 ‘십상시’들이 버젓이 살아있다”고 지적했다. 살아있는 권력의 잔재가 아직 사회 곳곳에 뿌리내려 있음을 시사한 그의 발언을 딛고 지난 주말 광화문으로 나선 촛불 인파들은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고, 대통령의 지지율은 콘크리트라 불리던 과거의 영광이 무색하게 5%라는 충격적인 수치를 기록하며 곤두박질쳤다. ‘갖춰야 할 모든 것을 안 갖춘’ 권력의 심장 앞에 역린은 역성의 당위가 되어 떨어졌고,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발언은 대국민 담화가 아닌 대국민 위화(違和)에 가까웠다.



역린을 건드린 죄로 내쳐진 방패는 자신을 향해 쏟아진 한 마디 한 마디를 받아 내다 삭금됐으나, 야당 입당 후 제련(製鍊)의 시간을 거쳐 총선에서 스스로를 창으로 주조(鑄造)한 끝에 가장 날 선 무기로 정치무대에 올라섰다. 세월호 7시간의 비밀, 최순실 국정농단의 세부사항까지 모든 의문을 묻었다 했던 그가 공식 석상에서 해당 내용을 묻는 것으로 권력의 심장을 향해 총구를 겨눌 것인가, 아니면 함구하는 것으로 역사의 흐름 뒤 관망자로 남을 것인가, 연일 흔들리는 대통령의 위태로운 항해 앞에 그 선택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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