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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뜀박질과 '꽈당 아빠'

시계아이콘01분 26초 소요

'쿵쾅쿵쾅….' 막상 출발선에 서니 가슴 속이 요동친다. 겁도 없이 선수를 자청한(?) 게 문제였다. 버텨야 하는데, 결국 떠밀려 나올 수밖에 없었다.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 왠지 모를 자신감이 어우러져 출전을 강행했다. 어린이집 운동회의 하이라이트, '아빠들의 계주'는 그렇게 시작됐다.


경기 시작 전 뜀박질 선수로 나선 아빠들의 모습을 스캔했다. 아랫배가 제법 두둑한 아빠부터 머리가 적당히 벗어진 아빠까지 만만한(?) 이들도 보였다. 구릿빛 근육질 젊은 아빠의 모습을 보니 은근히 긴장도 됐다.

왠지 수많은 눈초리가 나를 주시한다는 착각 속에 배턴 터치의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 우리 편 선수와 나의 간격은 점점 줄어들었다. '10m, 5m, 3m….' 다행히 우리 팀이 앞서고 있다.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는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찾아왔다.


우리 편 선수의 손에 쥐여 있던 배턴이 내게 전달되고, 드디어 첫걸음을 내디뎠다. 아빠가 얼마나 빠른 사람인지, 아들과 그의 꼬마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다다다다닥….' 불과 1초 남짓이었을까. 짧은 시간 '짜릿한 상상'을 이어갔다. 엄청난 속도감으로 빠르게 치고 나가는 장면, 뒤이어 꼬마 응원단의 열렬한 함성…. 이미 운동회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첫발을 내딛자마자 기우뚱, 균형을 잃었다. '이게 아닌데….'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뜀박질 선수의 강렬함은커녕 '꽈당 아빠' '민폐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우리 팀은 역전당했고, 그 원인을 내가 제공했다.


넘어지자마자 다시 일어섰지만, 상대 선수는 이미 나를 추월했다. '차라리 이대로 트랙을 벗어나 버릴까.' 순간적으로 갈등했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그런 황당한 행동을 하면 초롱초롱 눈망울들이 얼마나 실망하겠는가.


다시 일어나 이를 악물고 뛰었고, 우리 편 다음 선수에게 배턴을 전달했다. 상대 선수와의 간격은 4~5m에 달했다. 계주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대로 우리 편이 패배한다면 원망의 눈초리는 누구를 향할까. 식은땀이 흘렀다. 그때 반전이 일어났다. 나를 은근히 긴장시켰던 근육질 젊은 아빠는 우리 팀 마지막 주자였다. 그는 배턴을 받자마자 상대 선수를 무섭게 추격했다.


나의 짜릿한 상상을 그는 실천으로 옮겼다. 상대는 당황했다. 간격은 점점 줄어들어 추월 직전이었다. 그 순간 상대 선수도 꽈당 아빠의 대열에 합류했다. 경기는 역전됐다. 젊은 아빠는 우리 팀 꼬마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결승점을 통과했다. 패배의 원흉이 될 뻔했던 나의 민망한 장면도 자연스럽게 묻혔다.


안도의 마음 한편에 찜찜함이 가시지 않았다. '아들아, 아빠도 한때는 바람을 가르는….' 옛 시절 무용담을 꺼내려던 마음을 꾹 눌렀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게 달라졌다는 사실은 이날 계주에서 이미 다 보여줬다. 세월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지금은 종아리 근육이 해가 갈수록 부실해지고 있는 중년일 뿐이다. 여전히 탄력 넘치는 그 시절의 나로 착각하며 계주 대표로 나섰지만, '이불킥' 에피소드만 추가하고 말았다.


류정민 산업부 차장 jmryu@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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