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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다시 군대 가는 꿈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4초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아직 6개월의 의무 복무 기간이 남았다니…. 담당 공무원의 답변을 듣고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입대하면 가족 부양은 누가 하라는 말인가. 분명히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했다고 항변했지만, 상대는 입대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한다.


장면은 바뀌고 연병장이 눈앞에 들어온다. 저 멀리 보이는 막사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이등병다운 군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었을까. 주눅 든 표정과 어색한 발걸음, 영락없는 이등병의 모습이었다.

장면은 또 바뀌었다. 분명히 이상했다. 군에 입대한 지는 20년도 더 지났다. 이미 '예비역 병장' 타이틀을 땄다. 게다가 예비군은 물론 민방위도 졸업했다. 나이가 많다고 민방위 대상에서도 제외된 공인 받은 '아저씨' 아닌가. 그런데 왜 다시 입대하라는 것일까.


궁금증이 증폭될 무렵 눈이 떠졌다. 이번에도 꿈이었다. 다시 입대하는 꿈을 꿨다. 아직 의무복무 기간이 남아 있다는 얘기, 생업은 어떻게 할까 걱정하는 모습,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장면까지 매번 같은 장면의 꿈을 반복해서 꾼다는 게 신기했다.

다시 입대하는 꿈을 꾸는 예비역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많은 예비역이 제대한 지 한참 지난 후에도 입대하는 꿈을 꾼다. 군대가 너무 그리워서 그런 것은 아닐 테고, 너무 인상 깊게 각인돼서 그런 것은 아닐까.


강원도 철원, 화천, 양구…. 전방에서 고생한 이들이라면 쓰라린 기억 때문이라도 그 시절을 잊지 못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사정이 다르지 않은가. 누가 봐도 편한(?) 군대를 다녀와 어디 가서 고생했다고 말도 꺼내지 못하는데…. 건물 옥상에서 남산타워가 보이는 곳에서 근무했으니, 온통 국방색으로 둘러싸인 전방 부대와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군대에서 고생한 기억도 있지만, 즐거움도 없지 않았다. 운동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매일 점심, 저녁의 족구 시합은 쏠쏠한 기쁨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속되는 '군대스리가' 시합도 즐거움이었다. 겨울에 꽁꽁 언 땅 위에서 하얀 눈발을 맞으며 축구하는 것은 군대 시절이 아니라면 언제 경험하겠나.


하지만 운동의 즐거움이 군 생활 전반의 '힘겨움'을 상쇄할 수는 없다. 아무리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다시 입대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다수가 'NO'라고 답변하지 않을까. 기억 속에 남은 전반적인 군 생활을 날씨로 표현한다면 '맑음'보다는 '흐림'에 가깝다. 화장실에서 몰래 초코파이를 먹은 경험도 그렇고 간식을 받겠다고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를 넘나들며 종교행사장으로 달려가던 경험도 그렇고 민망한 추억은 하나둘이 아니다.


'다시 군대 가는 꿈'을 언제까지 꾸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사람 마음대로 꿈을 제어할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 어차피 그 꿈을 피하기 어렵다면 몰래 화장실에서 초코파이를 입에 구겨 넣는 그 장면만은 피하고 싶다. 아무리 꿈이라고 해도 너무 애잔한 모습 아닌가.


류정민 산업부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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