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최순실(60·여)씨의 국정개입 의혹과 관련해 새누리당이 전격적으로 '거국중립내각' 카드를 꺼내들자 야권이 돌연 태세전환에 나섰다. 먼저 거국중립내각을 제안하기는 했지만 섣부르게 수용할 경우 여권의 국면전환 시도에 휩쓸릴 수 있음은 물론, 실익도 담보할 수 없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31일 야권은 일제히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제안한 거국중립내각 구성에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새누리당은 거국내각을 말할 자격조차 없는 집단"이라며 "거국내각은 무엇을 전제로 하든 진상규명이 먼저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이날 오전 "거국중립내각은 반드시 돼야 하지만, (일에는) 순서가 있다"며 "거국중립내각은 박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초 이번 최순실게이트와 관련해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먼저 요구한 것은 야권이었다.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의원 등은 일찌감치 중립내각 구성을 요구했고, 신중한 태도로 관망하던 국민의당도 28일 비대위에서 거국중립내각 및 비상시국회의 수립으로 입장을 공식화 했다.
이처럼 야권이 돌연 태세를 전환한 이유로는 거국중립내각 제안에 동참할 경우, 여권의 정국전환에 휩쓸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거국중립내각은 성립의 가부와 관계없이 정국을 삼킬 수 있는 대형이슈다. 거국중립내각이 들어설 경우 현직 대통령이 사실상 2선으로 후퇴하고, 여야가 합의해 선출한 총리가 내각제처럼 국정을 운영하는 방식인 까닭이다.
특히 야권은 거국중립내각 제안이 각 당의 개헌파를 겨냥한 '야당 흔들기' 라고 보고 있다. 실제 여당이 거론한 총리 후보인 김종인 민주당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정치권 내 대표적 개헌론자로 통한다. 박 위원장은 "자기(박 대통령)는 그대로 있는 채 어떤 특정한 야권인사를 데려가는 것은 야권을 분열시키고 정국을 혼란시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거국중립내각이 구성되더라도 별다른 실익이 없다는 점도 있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거국중립내각이 들어서더라도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다. 언제든 박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회복할 수 있는 셈이다.
또한 20대 총선 결과 여소야대(與小野大) 지형의 3당 체제가 들어선 상황에서, 차기 대선까지 고작 1년여간 거국중립내각을 이끌 새 국무총리의 선출 역시 각 당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득보다는 혼란만 키울 여지가 다분하다.
추 대표는 이와 관련 "아무런 법적 권한 없는 허수아비 거국내각이 출발한다면 그것은 장식용 내각에 불과하다"며 "헌법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 거국내각은 대통령이 헌정질서를 이끌어 갈 자격과 상황되지 못할 때 정치 지도자 간 합의로 분위기가 조성되어야만, 국민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