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후쿠아 감독의 '매그니피센트 7'서 빌리 락스로 열연 "이상적인 배우의 삶을 살고 있다"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검정 페도라를 쓰고 흙먼지 속으로 걸어간다. 부스럭 소리에 사방을 둘러본다. 씩 웃더니 허리춤에 숨겨뒀던 육혈포 자루를 힘차게 꺼낸다. 배우 이병헌(46)은 어린 시절 이런 모습을 자주 상상했다. 카우보이가 되고 싶었다. MBC 주말의 명화로 접한 '황야의 7인(1960년)'의 크리스 아담스(율 브리너)처럼 폼을 잡고 손가락권총을 이리저리 겨눴다. 30여년이 지나 그는 1879년 미국 서부의 총잡이가 됐다. 14일 개봉하는 안톤 후쿠아 감독(50)의 '매그니피센트 7'에서 빌리 락스를 연기했다. 황야의 7인에서 제임스 코번이 맡은 브릿으로, 총과 칼을 능수능란하게 다룬다. 이병헌은 "고전영화를 리메이크한다는 사실도 놀라웠는데, 정의로운 총잡이로 참여하게 돼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매그니피센트 7은 황야의 무법자 일곱 명이 평화로운 마을 로즈 크릭을 무력으로 점거한 보그 일당의 악행과 착취에 맞서는 내용을 그린다. 황야의 7인보다 비장미는 덜하지만 시종일관 총소리가 울릴 만큼 통쾌한 액션을 선사한다. 이병헌은 덴젤 워싱턴(62), 크리스 프랫(37), 이선 호크(46) 등 할리우드의 쟁쟁한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그는 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황야의 7인과 비교될 수밖에 없어 부담이 컸지만 당시 정서를 그대로 가져오면서 화려한 액션을 더해 이 시대의 젊은이들까지 좋아할 수 있는 영화로 만든 것 같다"고 했다.
이병헌에게 서부 영화는 이번이 두 번째다. 만주 벌판을 무대로 한 김지운 감독(52)의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2008년)'에서 박창이를 연기한 바 있다. 그는 "이번 촬영이 훨씬 더 힘들었다"고 했다. "컴퓨터그래픽에 기대지 않고 모든 신을 루이지애나 주 배턴루지의 세트에서 촬영했다. 섭씨 40도에 습도까지 90%에 육박할 만큼 날씨가 무더워 촬영 중간에 한두 시간을 꼭 쉬어야 했다"고 했다. 이병헌은 거의 모든 액션의 동선을 짜고 훈련했다. 그는 "시나리오에 동작이 간략하게 설명돼 칼을 쓰는 액션 등을 연출해야 했다. 정두홍 무술감독(50)을 급하게 데려오고, 촬영 틈틈이 승마·사격·검술 등을 연습한 덕에 고된 일정을 무사히 해낸 듯하다"고 했다. 후쿠아 감독은 "발레 댄서처럼 역동적이고 우아했다. 당당함까지 겸비해 이소룡을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할리우드에서 벌써 여섯 작품을 선보인 이병헌은 차기작으로 D.J. 카루소 감독(51)의 '지.아이.조 3'에 출연한다. 그는 "작품 수가 늘고 있지만 특별한 목표나 계획은 없다. 한국과 미국을 오고가며 이상적인 배우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불안하지만 한편으로 기대되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배우로 일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 7일 개봉한 '밀정'에도 정채산으로 출연한다. 짧은 분량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전한다. 매그니피센트 7과의 피할 수 없는 경쟁에 그는 씩 웃으며 말했다. "명절에는 뭐니뭐니 해도 서부영화죠."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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