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률 9.2%…구직난 심해지자 불안한 마음 노린 사이비종교 성행
-길 묻는 척 다가와 "얼굴에 우환 있다"며 제사 지낼 것 요구하기도
-관광객인 척 하기, 사주풀이, 심리테스트 등 접근방식 날로 다양해져
-"불확실성시대에 사이비종교에 빠지는 건 당연…긍정적 피드백 필요해"
[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평소 종교를 잘 믿지 않았는데 제가 넘어갈 줄은 몰랐네요. 절박한 마음 때문에 정신이 잠깐 나갔던 것 같아요."
서울 동작구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이진구(28·가명)씨는 얼마 전 사이비종교 교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현금 30만원을 날렸다. 지나가는 길에 만난 젊은 여성 두 명이 가까운 마트가 어디냐고 물어보기에 답해주고 돌아서려는 찰나 이내 관상과 사주 얘기가 나왔다. 이상한 낌새를 챈 이씨는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근처 카페까지 따라갔다. 집안내력과 성격까지 맞추는 모습에 놀란 이씨는 결국 '취업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제사까지 지낸 뒤 가지고 있던 30만원을 건넸다. 이씨는 "돈 얘기가 나왔을 때 뿌리쳐야 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험에 조금이마 도움이 될까 그러지 못했다"며 "돌아와 생각해보니 괜한 곳에 큰돈을 날린 것 같아 후회된다"고 말했다.
하반기 공채시즌과 각종 공무원 시험 날짜가 다가오면서 절박한 취업준비생들을 노린 사이비종교가 성행하고 있다. 사이비종교는 겉으로 종교를 위장하지만 종교의 기본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비(非) 종교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단체를 가리킨다. 이들은 주로 대학가나 고시촌 등을 전전하며 학생들을 상대로 포교활동을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7월 청년실업률이 9.2%를 기록하는 등 여전히 청년층의 취업난은 심각한 상태다. 연간 기준으로 비교하면 2013년 8.0%였던 청년실업률은 올해(1~7월) 10.6%까지 올랐다. 특히 27일 열린 국가직 7급 공무원 채용 필기시험에 3만3548명이 지원해 경쟁률이 122대 1까지 오르는 등 청년층의 삶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취준생 김영빈(27)씨는 "한 달에 2~3번 정도 사이비종교인들을 만날 때가 있다"며 "계속 탈락을 하다 보면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점을 노리는 것 같다"고 했다.
지방에서 취업준비를 하는 김진아(25·여·가명)씨도 얼마 전 사이비종교에 당해 큰 피해를 볼 뻔했다. 또래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길을 물어보며 관상을 보더니 "언니는 결혼 일찍 하면 안 돼"라고 하는 말에 혹해서다. 취업과 연애 문제로 걱정이 많던 김씨가 호기심을 보이자 여성은 근처 패스트푸드점으로 이동해 사주풀이를 계속했다. 김씨가 이상한 마음에 일어나려 하자 여성은 갑자기 돈을 요구했다. 김씨는 "현금을 달라고 해 무슨 말이냐고 하니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강요했다"며 "결국 지갑에 있던 소량의 돈만 주고 나왔다"고 했다.
문제는 청년들이 이와 같이 피해를 당해도 돈을 돌려받거나 단속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언제 어디서 활동하는 지 알 수 없어 예방이 힘들고 피해자가 건넨 돈에 사주풀이나 관상 등 대가성이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사이비종교의 접근 방식이 관광객인 척 하기, 관상, 사주풀이, 심리테스트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문제점이 심각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청년들이 사이비종교에 빠지는 것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어떤 결과를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하려는 욕구에서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박은아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는 "종교라는 것이 원래 본인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을 신의 힘을 빌려서 위로를 받고자하는 것"이라며 "취업은 노력을 해도 그 결과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청년들이 사이비종교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고 했다.
박 교수는 "조그만 일이라도 그 결과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며 "예컨대 '공부를 한 달동안 했다니 다만 토익 점수가 10점이라도 올랐다'는 식으로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아야 청년들이 사이비종교에 피해 받는 경우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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