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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콤플렉스⑫]알몸여인 옆, 책 읽다 코골며 잠든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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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스토리 - "나는 황진이를 비추는 거울일뿐, 그녀는 지나간다" 서경덕의 마인드 컨트롤 비법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화담은 웃으며 말한다.

“그렇게 하시오. 괜찮으시다면 천으로 젖은 몸을 좀 닦아드리리다.”


“고맙사옵니다.”

이렇게 한 뒤 황진이는 별서에서 잠이 든다. 빗소리가 음악처럼 들리는 방, 화담은 계속 책을 읽는다. 삼경이 되자 그는 기생의 옆자리에 누워 가볍게 코를 골며 편안히 잠에 든다.


이 풍경이 조선시대 내내 화제가 되었던 이채로운 현장이다. 한 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칭송받은 여인이 알몸으로 잠들어 있는 그 옆에 한 지식인이 평화로운 표정으로 앉아 독서를 하다가 이윽고 그 곁에 누워 코를 골기까지 하며 잠에 드는 상황.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혹여 화담 서경덕이 '남성'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냐고 짓궂은 시비를 붙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얘기는 일체 없다. 그 사내에게서 그런 기색이 있었다면 남자를 경멸해온 황진이의 입이 가만히 있었을 리도 없어 보인다.


[황진이 콤플렉스⑫]알몸여인 옆, 책 읽다 코골며 잠든 사내 1986년 배창호감독 '황진이'의 장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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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후 황진이는 여러 해 동안 화담을 찾았다. 화담이 그토록 태연한 것이 한때의 꾸밈인지 아니면 진짜 깨달음 끝에 얻은 도(道)인지를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황진이의 불신도 지독하다 할 만하다. 어떤 유혹과 상황에도 흔들림이 없는 화담의 태도를 보고서야 이 기생은 ‘테스트’를 멈췄다. 그리고는 화담을 일생일대의 스승으로 모시고자 하였다.


이 유학자가 황진이를 보고도 꿈쩍하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나는 오히려 <화담집>에 남긴 노하우들이 역으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마음 다스리는 비결이 치밀하다. 한번 볼까.


그는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공부를 하면 무사무과(無思無過)의 경지에 이르게 될까.”


황진이를 옆에 재워두고 어떻게 생각도 하지 않고 허물도 만들지 않고 편안히 잠들 수 있는가. 그는 대답한다.


“지경관리(持敬觀理)하라.”


경(敬)이라는 걸 놓지 말고 문제의 핵심(즉, 理)을 살펴보라. 무슨 말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는 공허한 얘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인 만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경이란, (신경을) 한 곳에 두고 두리번거리지 않는 것이다(主一無適之謂也).


나는 책을 읽고 있었다. 아까는 황진이가 없었고 지금은 황진이가 있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다. 나는 내가 할 일을 하면 된다.


이 말 뒤에 있는 문장은 요즘 유행하는 숱한 ‘마음관리 노하우’를 다 제쳐버린다. 벽에 붙여놓고 좔좔 외우고 싶은 ‘이성(理性)’의 찬가다.


어떤 대상이 닿았거든 그 닿은 자리에서 더 나아가지 말고 멈추라
어떤 사태를 만났거든 그 만난 자리에서 더 나아가지 말고 멈추라
다른 무엇이 끼어들 사이가 없도록 해놓으면 마음은 한결같을 수 있다
사태는 끝나고 대상은 지나간다. 지나고 나면 쉽게 (마음을) 모을 수 있다
마치 깨끗한 거울 속이 텅 비어있는 것같이 맑아지리라


接一物則止於所接 (접일물즉지어소접)
應一事則止於所應 (응일사즉지어소응)
無間以他也則心能一 (무간이타야즉심능일)
及事過物去而便收斂 (급사과물거이편수렴)
湛然當如明鑑之空也 (담연당여명감지공야)


황진이의 손이 내 손에 닿았거든 그걸 당겨 내 욕망으로 만들지 말고, 그 손이 닿은 상태에서 가만히 멈추기만 하라. 그녀가 내 옆에서 어떤 유혹을 해도, 그가 유혹하는 그 상태로 그냥 가만히 멈추기만 하라. 네 마음 속에 그 접촉이나 유혹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고 그 상태로 한결같이 있어라. 오래 있는 것도 아니다. 잠깐 그렇게 있노라면 그 대상과 사태는 저절로 지나간다. 지나가고 나면 다시 마음을 수습하기는 쉽다.


이렇게 친절한 ‘유혹을 인내하는 비방’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마지막 구절은 숨이 턱 멎을 지경이다. 거울이란 외물을 비추지만 그 안에 외물을 들여다 넣지는 않는다. 거울 뒤편은 텅 비어 있다. 외물은 거울 속에 비치고는 지나간다. 네가 스스로 ‘거울’처럼 생각하고 있으면, 외물이 들어올 수 없지 않겠는가.


대체 화담은 어디서 이런 ‘스톱(止)’의 노하우를 익혔을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군자가 공부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공부를 통해 그칠 줄 아는 법(知止)을 터득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공부를 통해 이걸 배웠다. ‘황진이 테스트’는 그가 홀로 성취한 공부를 평가받는 야심찬 수능시험이었다.” (졸저, '옛공부의 즐거움' 중에서)


나는 서경덕의 지론(止論)을 보면서 미국 스탠퍼드 대학 월터 미셸 박사가 한 ‘마시멜로 실험’을 떠올린다. 네 살 바기 아이들을 모아놓고 잠시 나가면서 “돌아올 때까지 방에 있는 마시멜로 과자를 먹지 않으면 한 봉지를 더 주겠다”고 말한다. 아이들 중의 3분의 1은 유혹을 참지 못하고 방에 있는 과자를 먹었고 3분의 2는 참았다. 참은 아이들에게는 약속 대로 과자 한 봉지씩을 더 주었다.


미래의 더 큰 가치를 위해 당장의 욕구나 만족을 참는 능력을 실험한 이 연구는 ‘만족 지연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이 스트레스에 강하고 사회성과 학업 성취도가 뛰어나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화담의 接一物則止於所接 (접일물즉지어소접)은 바로 만족을 지연시킴으로써 삶의 가치를 늘리는 지혜이기도 하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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