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백전노장 임레 꺾고 펜싱 남자 에페 사상 첫 금메달
답답했던 한국 금맥에 단비 같은 승리
막내 박상영(21ㆍ한국체대)이 금맥을 찔렀다. 10일 새벽(한국시간)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경기장 가장 높은 곳에 태극기가 올라갔다. 리우올림픽 한국대표팀의 세 번째 금메달이자 펜싱 남자 에페 사상 첫 올림픽 1위. 가라앉았던 우리 선수단의 분위기에도 아연 활기가 돈다.
한국 펜싱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기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남자 플뢰레 개인전에서 김영호, 2012년 런던올림픽 여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김지연이 우승하고 남자 사브르 단체전을 석권한 데 이어 네 번째다. 박상영은 임레의 '천적'이다. 2014년 5월(15-13 승)과 지난 2월(15-11 승) 대결해 모두 이겼다.
10-14까지 몰렸다. 한 점만 더 뺏기면 끝이었다. 베테랑 검객 제자 임레(42ㆍ헝가리)의 승리가 눈앞에 보였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박상영은 물러서지 않았다. 경기를 끝내려고 달려드는 임레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며 반격을 했다. 오히려 임레보다 더 깊이 찌르고 들어갔다. 백척간두 진일보! 기적이 일어났다. 내리 5점을 빼앗았다.
펜싱 국가대표팀 조종형 총감독(55)은 "결승전에서는 이런 대역전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노련미 대 패기의 경기였는데, 임레가 자신감이 넘쳐서 빨리 끝내려는 계산이었는지 공격을 서둘렀다. 그 스코어에서 공격을 해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박상영의 국제펜싱연맹(FIE) 남자 에페 랭킹은 21위, 임레는 3위. 그러나 올림픽에서 랭킹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한국 펜싱 대표팀의 막내는 거침이 없었다. 16강에서 세계랭킹 2위 엔리코 가로조(27ㆍ이탈리아)를 15-12로 꺾었다. 8강에서 맥스 하인저(29ㆍ세계랭킹10위)를 15-4로, 4강에서 벤자민 스테펜(34ㆍ세계래킹13위)을 15-9로 압도했다.
박상영은 리우로 떠나기 전에 인터뷰를 했다. "어머니께서 꿈자리가 좋다시며 '너라면 할 수 있다 '고 하셨습니다." 어머니 최명선 씨의 꿈은 아들의 현실이 됐다. 박상영은 금메달을 목에 걸고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 외쳤다. 박상영은 진주제일중학교 1학년 때 펜싱부 선생님의 권유로 펜싱 검을 잡았다. 펜싱 장비인 프로텍트, 브레이드(펜싱칼), 펜싱화 등은 세트가격이 200만원을 넘는다. 선배들의 펜싱 장비를 물려받아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장학금을 받고 처음으로 새 개인장비와 옷을 구했다"고 했다.
재능은 곧 빛을 발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전국소년체육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받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벌써 성인선수들과 경쟁했다. 2011년 남녀 에페선수권, 대통령배 전국펜싱선수권에서 잇달아 입상(동메달)했다. 고등학생이 대통령배 전국선수권에서 입상하기는 21년만이었다. 1990년 진주기계공업고등학교의 구교동 선수(당시 18세)가 남자 에페 3위에 입상했다. 2013년 태극마크를 달면서 최연소 기록(18세)도 세웠다. 2014년 인천아시안 게임에서는 단체전에서 우승했다.
고비도 있었다. 승승장구하던 박상영은 지난해 3월 십자인대가 파열돼 수술대에 오른 뒤 1년 가까이 재활했다. 세계랭킹이 100위권 밖까지 떨어졌다. 지난 2월 캐나다 밴쿠버 국제월드컵대회에서 동메달, 4월에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내 세계랭킹을 21위까지 끌어올렸다. 올림픽 출전권도 따냈다.
박상영은 경기를 앞두고 언제나 혼잣말을 한다. "결과는 정해져 있다. 훈련한 만큼만 보여주자."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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